방주의 창

[방주의 창] 가르치는 교회와 배우는 교회 / 송용민 신부

송용민 신부 (주교회의 사무국장·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7-08-14 수정일 2017-08-14 발행일 2017-08-20 제 305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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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점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데우스」의 연작을 읽어보면, 앞으로의 세상은 인공지능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제4차 산업혁명을 넘어 신(神) 없는 초인(超人)을 향한 니체(Nieztsche)의 열망이 과학 기술 문명과 만나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중세 신 중심의 세계관에 갇혀 있던 서구의 그리스도교 문명의 역사는 15세기 신대륙 발견을 시작으로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운동, 종교 개혁과 계몽주의 사상 그리고 근대의 무신론의 도전 등의 정신 혁명을 거치면서도, 세상이 넘볼 수 없었던 신의 존재와 초월을 향한 종교적 인간의 당위성을 세상에 가르치기 위한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마디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명을 받들어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마태 28,19-20) 해야 하는 ‘가르치는 교회’로 살아왔다.

교회가 지켜온 전통과 질서에 대한 도전은 이 ‘가르치는 교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고, 신자들은 하느님 계시를 담지하고 보전해야 하는 교회의 성직자와 주교들에게 듣고 배우며 순명하지 않으면 제재나 형벌, 파문을 당해야 했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교회의 세속적 권력에 대한 비판과 20세기 서구의 합리적 이성과 자유주의로 대변되는 근대주의 흐름 속에서도, 가톨릭교회는 교황의 세속적인 권한을 옹호하고, 사회주의자들에 대항하면서 교황에 대한 순명이 혼란스런 세상에 방주의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70)에서 강조된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권은 세속적인 권력을 잃어 가던 교회가 교황권의 영향력과 권위를 크게 신장시켜 ‘가르치는 교회’의 위상을 잃지 않으려고 했던 행보였다.

세상이 바뀌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행보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배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먼저라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귀가 닳도록 듣는 대화의 제1원칙이지만, 교회는 듣기보다는 말하고 가르치는 것에 늘 관심을 가져왔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중세의 세속화에 맞서 그리스도의 가난을 몸으로 실천할 때 사람들은 복음이 지닌 기쁨을 되찾았듯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세속화와 이기적 개인주의의 물결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듣고, 손을 내밀고, 함께 아파하며,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권력화된 교황권의 권위를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으로 되돌리고자 한다. 이러한 변화의 뿌리는 복음을 현대 사회에 적응시키려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의 개혁과 쇄신의 정신이었고, 교황님은 공의회의 정신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한국교회의 현실 지표들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굳이 통계를 보지 않아도, 현장에서 사목하는 본당 신부님들의 목소리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교회가 듣고, 배우길 갈망하는 신자들을 상대로 권위 있는 가르침을 줄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정반대로 교회가 세상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성직자를 ‘가르치는 교회’로, 평신도는 ‘배우는 수동적 교회’로 나누던 시대는 끝났다. 여전히 교회가 누려온 권위의 향수에 젖은 성직자들의 구태의연한 태도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신자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젊고 열정적인 사제와 수도자들이 먼저 듣고, 섬기며, 공감하고 연대하며 친교의 교회를 꿈꾸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미래의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복음의 진리는 바뀌지 않는다. 단지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교회의 방식은 바뀔 수 있다. 교회의 참된 과제가 “시대의 징표를 읽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사목헌장 4항)하는 일임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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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민 신부 (주교회의 사무국장·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