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보공(補空) / 노성호 신부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
입력일 2017-08-08 수정일 2017-08-09 발행일 2017-08-13 제 305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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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공(補空)’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어느 평일미사 강론 때 교우들에게 질문을 했더니 다들 어안이 벙벙해지시더군요.

“보공이라 함은 누군가가 죽었을 때 염을 끝낸 망자(亡者)를 관 속에 넣고, 그 후에 관 속 남은 공간을 망자의 유품들로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랬더니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거리시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던 1991년 10월에 보공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몇몇 어른들이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고운 삼베옷을 입히더니 커다란 관 속에 할아버지를 넣었고, 이윽고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입고 지내셨던 옷가지들과 물건들로 관 속을 채웠습니다. 그러더니 끝으로 할아버지께서 평소 기도할 때 사용하신 향나무 묵주와 기도서, 그리고 늘 바라보고 지내셨던 십자가 고상을 넣고 관 뚜껑을 닫았습니다. 지금도 할아버지께서는 그때 보공해 드린 물건들을 도구 삼아 하느님 나라에서 열심히 기도하며 지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간직하고 천국으로 가고 싶으세요? 아니, 이 세상 삶을 열심히 살다가 나중에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날 그분 품으로 가게 될 때 여러분의 관 속이 무엇으로 채워지길 바라시나요?

저의 친가 동네에는 평소 약주를 너무 좋아하시고 즐기시던 할아버지께서 계셨는데, 사람들이 그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평소에 즐겨 드시던 소주 한 병을 관 속에 넣어드렸답니다. 저승 가셔서도 시원하게 한 잔 하시라는 말씀과 함께요.

그리고 제가 아는 어떤 성당 회장님은 고스톱을 너무 좋아하셔서 평소에 함께 고스톱을 즐기시던 주위 분들이 그분께 “형님, 형님 돌아가시면 큼지막하고 두툼하 고 선명한 놈으로 화투 한목 제대로 장만해서 관 속에 넣어드리리다” 그러셨답니다. 그랬더니 그분 뭐라고 하셨게요? 대답이 아주 걸작이셨습니다. “거기 가도 자네들처럼 나랑 같이 고스톱 쳐 줄 인간들이 있을까?”

사실 보공을 하면서 관 속에 억만금을 넣어준다 한들 그것이 망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어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게 지어 놓으셨는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참으로 어리석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계속 가지려고만 들고 내어놓으려 하지 않는 고집스런 모습을 볼 때면 말이지요.

결국에는 하나도 얻어 가지 못할 테고, 고작 가져가는 것이라고는 평소에 입고 지냈던 옷가지들 몇 개, 그것도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공해 줘야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인데도 때로는 인색할 정도로 욕심을 내면서 살아갈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깊이 뉘우치며 성찰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 하루 한가로운 날을 잡아서 저의 보공 때를 위한 ‘보공 목록’을 하나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괜히 쓸데없는 것들이 저의 아까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일목요연하게 제대로 된 목록을 만들어 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연 제1목록은 ‘성경’이라고 써 넣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은 “제 발의 등불, 저의 길에 빛”(시편 119, 105)이니까요. 교우 여러분들께서도 한 번 작성해 보셔요. 좋은 것들로 채워진 여러분만의 성스러운 ‘보공 목록’을 말입니다. 그것으로 여러분의 삶은 아름답게 장식되고 꾸며질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정성된 마음을 좋으신 아버지께서도 기꺼이 받아들여주실 것입니다.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