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으로 가는 길, 내 마음부터 먼저 살피자 "몸과 마음, 영 세 차원이 어우러지는 파스카 삶 돼야"
찬미 예수님.
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오랜 가뭄에 목말랐었고, 많은 비에 피해도 많았던 시간들을 지나 이제는 습한 날씨와 내리쬐는 태양 볕으로 힘들게 지내는 때입니다. 그래도, 각자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우는 작년 여름이 더 힘들었습니다. 신학교에서 보내는 첫여름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참 대단했지요. 제 방이 5층 꼭대기에 남향이어서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실에서 자야 했고, 내내 더위와 싸우는 통에 어떻게 지냈는지도 모르게 보내버린 여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올해는 훨씬 나은 편입니다. 아직까지는 계속해서 방에서 잘 수 있으니까요. 제 방에서 나와 반 층을 올라가면 명상의 방이라는 기도방이 나옵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도록 성체를 모셔 놓은 널찍한 온돌방이죠. 위치적으로 제 방에서 보면 성당보다도 훨씬 가깝고 또 아늑한 분위기여서 기도하러 가기에는 딱 좋은 곳입니다. 더구나 학생들이 없는 방학 기간이기에 편안한 옷차림으로 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그래서 늘 방학 때가 되면, 성무일도도 명상의 방에 가서 하고 성체조배도 자주 해야겠다 마음먹곤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더위입니다. 아무리 작년보다 덜하게 느껴지는 올여름 더위라지만 명상의 방에 가서 성체 앞에 앉아있을라 치면 시원한 방을 떠나기 싫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기 때문입니다. 성체 앞에 머물러 있고픈 마음도 있지만, 더운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제 안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눅눅함을 방지하기 위해 약하게 불을 때고 있어서인지 따뜻하게 느껴지는 온돌방에서 몇 번 땀을 흘리고 난 뒤로는 이제 아예 기도방에 갈 생각조차 안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꼭 성체 앞에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하면서 제 나름으로 변명을 하지만, 그래서 기도를 덜 하게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우리 몸으로 느껴지는 이유들, 예를 들어 추위나 더위 또는 피곤함이나 배고픔 때문에 기도생활에 소홀해지거나 아니면 기도를 하더라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것은, 한편으로는 핑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시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신수련 피정을 들어가면 면담 때마다 지도신부님께서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잠은 잘 자는지를 물어보시죠. 기도에 집중할 수 있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조건들을 잘 채울 수 있도록 지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보다도 더 자주 그리고 더 큰 힘을 가지고 우리의 기도생활, 영성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네, 바로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이러한 예는 너무나 많지요.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용서입니다. 누군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신앙인으로서 그를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쉽게 용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자꾸만 미움과 원망이 되살아나서 마음이 편치 않죠. 그런데 또 괴로운 것은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하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고해성사 때마다 죄를 고백하고 은총을 청하지만, 그 미움은 도무지 사라지질 않죠.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n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