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97) 냉장고보다 더 중요한 것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8-08 수정일 2017-08-08 발행일 2017-08-13 제 305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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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형제님이 늙은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휴가를 갔습니다. 형제님은 작년부터 부모님 댁에 냉장고를 바꾸어 드리고 싶었는데,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못 바꾸었답니다. 그래서 올 초부터 냉장고를 바꿔드릴 계획을 세웠고, 휴가 때 냉장고를 바꿔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그 형제님은 부모님에게 말했답니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 이 냉장고는 17년 정도 썼는데 이번에 제가 바꿔 드릴게요. 냉동실 문도 잘 안 닫히고, 냉장실은 기능도 제대로 못해요.”

그러자 그 형제님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쳐다보며,

“여보, 아들이 사는 것도 어려운데, 당신이 냉장고를 바꾸어 달라고 그랬소?”

그러자 어머니는

“아니, 이 사람이. 나는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어요.”

부모님은 냉장고 때문에 괜히 아들에게 부담을 준 것이 아닌가 해서, 미안해했던 모양입니다. 이윽고 그 형제님은 2박3일의 짧은 휴가 마지막 날, 대형마트에서 주문한 냉장고가 그 날 오후 3시까지 집으로 배송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형제님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부모님은 고마운 마음에,

“에이, 너도 어렵게 사는데…. 그려, 고마워”라고 하셨답니다.

그 형제님은 슬슬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하려는데, ‘냉장고가 온다’는 말에 뭔가가 찝찝하더랍니다. 형제님은 속으로, ‘냉장고를 바꾸어 드리기는 하지만, 새 냉장고의 기능 설명을 어떻게 하지! 그리고 새 냉장고가 오기 전에 지금 있는 냉장고 음식을 다 빼놓아 할 텐데! 그것도 힘든 일이겠다.’ 그러저러한 생각에 형제님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랍니다.

할 수 없이 형제님은 서울 가는 시간을 늦추고, 부모님과 함께 냉장고 안에 있는 모든 음식을 다 뺐습니다. 냉동실 음식을 하나씩 밖으로 꺼낼 때에는 음식들이 비닐봉지에 잘 쌓여 있더랍니다. 알고 보니, 부모님께서는 다른 자녀들이 휴가를 오면 뭔가를 해 줄 것들을 잘 포장해 놓은 것입니다. 그 형제님은 기존의 냉장고 안에서 하나하나 사연 있는 음식을 빼면서, 부모님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이윽고 시간이 돼 냉장고가 왔습니다. 냉장고를 가지고 온 기사분이랑 상의해서 기존의 냉장고를 빼놓고, 새 냉장고를 부엌으로 들여놓는데 이것저것 치울 것이 그렇게 많더랍니다. 그 형제님은 속으로 ‘냉장고 하나 바꾸는데 이렇게 일이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새 냉장고를 들여놓고, 밖으로 꺼내 놓은 음식들을 부모님과 정리해서 하나씩, 하나씩 들여놓는데 부모님은 계속해서 ‘고맙다, 고마워’ 하더랍니다. 그 고맙다는 말이 냉장고를 바꿔줘 고맙다는 말뿐 아니라, 냉장고를 새롭게 바꾸는 전 과정을 함께 해 주어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마지막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그 형제님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냉장고 하나 바꾸는 데에…. 휴! 그동안 돈이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가사 살림의 전후 과정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원래 이게 삶이었는데, 그동안 참 이기적이며, 바보처럼 살았구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