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사회교리 아카데미]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 다 같지 않습니다

상지종 신부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rn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
입력일 2017-08-08 수정일 2017-08-09 발행일 2017-08-13 제 3057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입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벗을 위하여 기꺼이 제 목숨 내어놓는

보잘것없지만 위대하고

자신을 감추지만 환히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재물과 권력을 섬기며

다툼과 시기 가득한 처절한 경쟁에서

제 살 길 찾기 위해

무기 삼아 그리스도를 몸에 두른

거룩한 척하지만 속되고

고상한 척하지만 천박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추악한 어둠이 지배하는 광란의 시간에

희망의 새벽을 맞으려

여린 몸 아낌없이

작은 빛으로 사르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기나긴 밤과 찰나의 낮 사이를

비겁하고 교묘하게 넘나들며

탐욕과 무관심 가득한

암흑을 탐닉하면서

오히려 섬김과 돌봄의

빛의 자녀라 자처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억압에 대한 굴종이

평화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불의한 권력을 꾸짖고

억울하게 짓밟힌 이들을 일으켜

정의로운 평화를 보듬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모든 이가 더불어 함께하는 삶보다

가진 이들의 안락과 평안을 위한

버려진 이들의 침묵과 사라짐을 강요하는

평화라는 이름의 죽임을 즐기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 말해지는 때에

모든 것이 평화롭다고 느껴지는 때에

그리스도인은 모두

다 같은 그리스도인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버리고

심지어 목숨까지 버리고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야 할 때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

다 같은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주님을 모신 성전에서

주님을 모신 살아있는 성전으로서

감사와 찬미를 드릴 때에

그리스도인은 모두

다 같은 그리스도인처럼 보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일하시는 세상에서

주님의 손발이 되어야 할 성사로서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아우러지는 삶을 살아갈 때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

다 같은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입으로만 읊어지는

장엄하지만 초라하고

희뿌옇기 그지없는

메마른 신앙고백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모두

다 같은 그리스도인처럼 보입니다.

지금 여기 삶의 순간순간 불쑥 오시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다그치시는 사람의 아들을

벗이요 동지로 받아들이느냐

천덕꾸러기로 내치느냐

천하고 낮은 곳에 오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따르느냐

제 배를 채워주는

돈 힘 세상 온갖 우상을 섬기느냐

살기 위해 죽임의 놀이를 즐기느냐

살리기 위해 죽음의 십자가를 지느냐

쉼 없는 결단의 순간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

다 같은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시는 날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사람과 사람을 갈라 세울 때에

가장 작은 형제에게 베풀었기에

사람의 아들의 아버지께 복을 받아

세상 창조 때부터 준비된

하느님나라를 차지할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오직 자신 만을 보듬었기에

사람의 아들에게서 쫓겨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에 내쳐질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시는 날

같이 들에 있던 두 남자를 갈라 세워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두듯이

함께 맷돌질 하던 두 여자를 갈라 세워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두듯이

언젠가 세상의 마지막 날에

생각하지 않은 때에 불현 듯

다시 오실 사람의 아들께서

그리스도인을 갈라 세워

당신을 따른 그리스도인은 데려가고,

당신을 버린 그리스도인은 버리실 것입니다.

전에 오셨고

지금 함께 계시고

언젠가 다시 오실 사람의 아들께서

기쁘게 품에 안아주실 그리스도인과

슬픈 낯으로 밀어내실 그리스도인으로

그렇게 그리스도인은 나뉠 것입니다.

기쁨과 설렘으로

사람의 아들을 맞이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행복합니다.

자신을 만나러 오시는

사람의 아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그리스도인은 더욱 행복합니다.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사람의 아들 앞에 서기를 꺼려하는

그리스도인은 불행합니다.

자신을 만나러 오시는

사람의 아들을 슬프게 하는

그리스도인은 더욱 불행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상지종 신부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rn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