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국내 첫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 문 연다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7-08-08 수정일 2017-08-08 발행일 2017-08-13 제 3057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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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해고 노동자 돕기 위해 교회와 시민사회 등 힘 모아
후원금·전시수익금·재능기부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에 공연장·회의실·대담실 갖춰
19일 서울 영등포 현지 개소

천주교 등 종교계와 시민사회가 연대해 8월 19일 개소하는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 건물 전경. 사단법인 ‘꿀잠’ 제공

한국교회가 중심이 돼 노동계, 문화계 등 시민사회와 손잡고 한국사회 최초로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대표 조현철 신부)을 세운다.

‘꿀잠’은 우리 사회 약자인 기간제 근로자, 아르바이트생, 계약직 근로자를 포괄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이 부당하게 해고됐을 때 거리에 나서 복직운동을 하면서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는 고통을 함께 끌어안자는 취지에서 2015년 7월부터 설립이 모색돼 왔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역 주변 등 대로변에 텐트를 치고 한뎃잠을 자던 비정규 해고노동자들이 “잠만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목소리를 내고 ‘초기제안자’로 나서자 문정현 신부(전주교구 원로사목자), 예수회 조현철·김정욱 신부,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와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개별 남녀 수도회 등이 팔을 걷어붙이고 ‘꿀잠’ 설립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2015년 12월 ‘꿀잠 추진위원회’가 발족된 데 이어 2016년 6월 ‘꿀잠’ 창립총회를 열고 같은 해 7월 사단법인 ‘꿀잠’이 출범했다. 올해 3월 건물을 매입해 4월 공사를 시작했고 현재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사회 원로인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85) 소장 등 노동계 인사들이 후원자로 참여했고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 정택용 사진가 등 사회 저명인사들, 김소연 전 기륭전자분회장, 서울 지하철 승무원 황철우씨, 현대제철 순천공장 비정규직 박정훈씨 등 현장 노동자들, 이도흠 한양대 교수, 오민애·조영선 변호사 등 학자와 법률가 등도 ‘꿀잠’ 설립 취지에 공감하고 이사진과 감사진을 구성했다.

건물 매입비용 약 12억 원은 사회 각계에서 보내온 후원금, 전시회 물품 판매 수익금 등으로 6억 원을 마련했고 부족한 부분은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문정현 신부와 백기완 소장은 지난해 7월 서울 청운동 류가헌 갤러리에서 서각과 서예 전시회를 열어 판매수익금 2억 원 전액을 내놓았다. 서울 지하철 노조는 노조 차원에서 4000만 원을 ‘꿀잠’ 설립에 후원했다.

조현철 신부는 “정규직 노조 조합원 개인 차원이 아니라 노조 차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시설에 후원금을 낸 것은 유례가 드문 일로서 ‘꿀잠’ 설립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벽을 허무는 가교 역할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목공 기술이 있는 김정욱 신부는 리모델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간을 아껴가며 목공 연장을 들고 ‘꿀잠’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꿀잠’은 지하 1층, 지상 4층과 옥탑방을 갖춘 규모다. 지하는 공연장과 회의실, 행사장 등으로 사용하며 1층은 식당과 대담실, 장애인을 위한 공간, 4층과 옥탑방은 비정규 해고노동자의 쉼터로 쓰인다. 2~3층은 현재 임차인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 2018년부터 쉼터로 사용할 예정이다. 4층에 20명 안팎, 옥탑방에 5명 가량 잠을 잘 수 있다. 수면 공간이 필요한 비정규 해고노동자들은 ‘꿀잠’에서 간단한 상담을 거쳐 무료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고 사회운동가들도 무료이용이 가능하다.

‘꿀잠’ 개소식은 8월 19일 오후 3시30분 서울시 영등포구 도신로 51길 7-13 현지에서 열린다. 조 신부는 “‘꿀잠’을 어린 시절 여름방학 때 찾던 외가 같이 비정규 해고노동자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며 “‘꿀잠’이 개소하면 상근직원 인건비와 건물 유지관리비 등 많은 비용을 해결해야 하지만 하느님이 부족한 만큼 채워주실 것을 믿는다”고 밝혔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