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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세

김종숙(데레사·의정부교구 적성본당 장파리공소)
입력일 2017-08-08 수정일 2017-08-08 발행일 2017-08-13 제 305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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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으로부터 48년 전, 1969년 10월 천주교 신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요셉)은 북한 평강에서 소신학교에 다니다가 전쟁 때문에 이남으로 와서 저와 결혼을 했지요. 6·25 사변이 아니라면 신부님이 되셨을지도 모를 분입니다. 시댁은 5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이었고 신심 또한 깊었습니다. 저는 관면혼배하고 10남매의 둘째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6개월 교리를 받고 영세도 받았죠. 친정 아버지는 그 당시에 상투머리를 하고 갓과 망건을 쓰시고 외출하실 만큼 완고하시고 유교 사상만 따지시는 분이었는데 어떻게 저를 천주교인한테 보내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입니다. 역시 주님의 뜻이겠지요.

결혼 후 저는 미사 참례를 거르지 마라, 성내지 마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라, 욕심부리지 말며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이타주의자가 되어라 등 시댁 어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며 지냈습니다.

저는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늘 기쁨으로 살고 있으니까요. 남들은 나를 어떤 모습으로 볼지 모르겠으나 내 자신은 항상 기쁨으로 넘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신앙생활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성령을 몰랐을 때 저는 하는 일이 안되면 공연히 하느님만 원망하곤 했었습니다. 양계를 크게 했지만 실패했고 목장도 하다가 사료파동으로 망했고 또 한우도 기르다가 시세가 폭락해 팔아버리고…. 특전미사도 한 번 본 적 없을 만큼, 주일미사를 최우선으로 참례하고 열심히 믿었건만, 하느님이 계시다면 이렇게 망하게 두시나이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었지요.

하지만 성령을 알게 된 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감사할 줄 알게 되었으며 사업이 안되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누구보다 하느님의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어려운 역경도 주님 뜻으로 돌리고 열심히 살게 되었답니다.

친정오빠 두 분이 계셨어도 친정 어머니를 제가 모시고 살았어요. 왜 딸이 모시냐면서 오빠들은 만류했지만, 저는 어머니를 저희가 모시고 살면서 교리를 가르쳐 드리고 아침저녁 기도를 함께 봉헌하고 싶었답니다. 그러다 병원에 계실 때 대세를 드렸으며 마리아라는 본명도 받으셨어요. 장례미사 때 신부님께서 “딸이 큰 효도를 했다”고 칭찬해주셨지요. 저는 그때 어머니를 보내는 슬픔의 눈물과 함께 어머니의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편히 쉬실 수 있다는 기쁨의 눈물까지 한꺼번에 나와 말로 하기 힘든 벅찬 기분을 느꼈습니다.

살아가면서 너무 힘든 역경에 처했을 때는 이 말씀을 되새기면서 버텼습니다. “너희 고통이 내 고통만 하느냐?” 우리들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해도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데 비하면 못 참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을 모시기만 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자 믿음은 더욱 성장하였죠.

저는 딸만 넷인데 아들이 없어 서운하기보다 이렇게 건강하고 예쁜 딸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형편이 여유롭지는 않지만 마음은 언제나 부자죠. 주님의 은총을 모든 이와 나누고 싶어 용기 내어 펜을 들었습니다. 딸들에게도,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신앙을 깊게 심어 주고 싶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에게도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시고 평화를 주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김종숙(데레사·의정부교구 적성본당 장파리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