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96)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좋은 경험 (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8-01 수정일 2017-08-02 발행일 2017-08-06 제 305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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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매님 친구분의 그 엉성한 계획을 듣고 그만 웃음이 나와 버렸습니다.

“형제님의 착한 성품을 아시는 자매님. 그냥 평소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으면 될 텐데, 굳이 친구의 조언을 실행할 생각을 하신 거예요? 이렇게 대화가 잘 되는 남편인데!”

그러자 남편이 대신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 집 사람은 마음이 착해서 귀가 얇기는 하지만, 그렇게 어리숙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날은 완전 어리숙함의 대명사가 됐던 거예요. 그날 친구들이 돌아가자, 아내는 친구들이 말해준 대로 소주를 준비했지만, 계획대로 잘 안 된 거예요. 그중에 결정적인 것이, 소주 반병을 비우고 나머지 반병은 침실 바닥에 두라고 했던 거예요. 아내는 소주 반병을 비우라는 말을 바보같이, 소주를 마셔서 비우라는 소리로 알아들었던 거예요.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는 아내는 소주 반병을 어떻게 마실까 고민하다가, ‘남편이 한 평생 오로지 나만을 생각할 수 있다’에 이까짓 소주 반병이 문제겠느냐 싶어, 그날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주 반병을 마셔버린 거예요. 그런데 바로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가 되었어요.

내가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갔는데, 어머니가 안방문이 안 열린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나는 집 뒤를 돌아 안방과 연결된 창문을 열었더니, 아내가 대자로 뻗어 누워 있는 거예요. 입에는 하얀 거품을 물고. 창문으로 아내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꼼짝도 안 해서, 할 수 없이 열쇠 수리하는 분을 불러서 안방 문을 열었더니, 방안 가득 술 냄새가 진동을 하는 거예요. 나는 아내를 업고 병원 응급실로 뛰었지요. 응급실에서 6시간쯤 후에 안정을 찾은 후 집으로 오는데! 휴…”

그러자 아내는 이렇게 말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날, 다시는 하고 싶지 않는 좋은 경험을 통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기는 해요. 부부 관계 안에서 배우자의 마음은, 어떠한 연기를 통해 충격을 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저 큰 걸음을 걷듯이 배우자의 마음을 우직하게 믿고, 그렇게 배우자를 믿은 대로 배우자의 마음을 따라가면서 살아가다 보면, 서로가 자연스럽게 소통이 된다는 거예요. 이 사람 말 듣고 배우자의 마음을 바꾸려 하고, 저 사람 말 듣고 배우자의 모습을 변화시키려 한다면 억지로야 바뀔 수 있겠지만, 그건 우리 부부다운 변화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 부부다운 변화를 선물로 주신다는 것을 믿고 있기에, 오늘도 배우자의 모습 속에서 하느님 사랑을 발견해요. 뭐 밭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듯 말이에요.”

“우와, 자매님, 그 날 죽었다 살아나서, 큰 변화를 체험하셨네요.”

인간 개개인의 모습이 다르듯, 부부의 모습 역시 천차만별입니다. 하지만 부부가 사랑하는 모습은 하나의 모습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하느님, 바로 그분의 모습 말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