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알파벳은 모두 22개인데, 카프는 11번째 글자이니 이 산책길은 이제 절반을 지나는 셈이다.
■ 손가락과 손바닥
카프의 가장 오래된 형태를 보면, 마치 두 손을 모래바닥에 찍은 것처럼 손가락과 손바닥이 뚜렷이 보인다.(그림1) 이 글자는 점차 단순화되어, 마치 나뭇가지처럼 발전했다. 그러다가 긴 선을 오른쪽에 세로로 긋고(손목?), 짧은 선 두 개를 왼쪽에 긋는(손가락?) 형태로 발전했다. 이렇게 단순한 ‘3획의 형태’가 고대 셈어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쓰였다.
우가릿어 문자를 보면, 큰 쐐기를 오른쪽에 찍고 작은 쐐기를 왼쪽에 두 개 찍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가장 일반적인 3획의 형태를 쐐기문자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3획의 형태가 방향만 바꾸어 고대 그리스어 알파벳으로 전승되었다. 그리고 서유럽 언어의 K로 이어진다. 그리스인들은 이 글자의 방향을 바꾸었지만, 이름은 그대로 따랐기에 고대 셈어의 ‘카프’는 그리스어의 ‘카파’가 되었다.
■ 손바닥처럼 오목한 것
한편 고대 아람어 계통에서는 이 글자의 ‘손가락’ 보다 ‘손바닥’이 표현되었다. 고대 아람어 문자를 잇는 것이 현대의 히브리어 문자다. 이 문자에서는 손가락은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오목하게 만든 손바닥만 연상할 수 있다. 히브리어에서 카프는 ‘손가락’보다는 ‘손(바닥)’을 의미하는데, 아마 이런 의미가 이 글자의 형태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구약성경 히브리어에서 카프는 손바닥처럼 우묵한 것을 가리킨다. 야곱이 하느님의 사자와 “동이 틀 때까지”(창세 32,24) 씨름을 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때 하느님의 사자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 카프를(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 카프를(뼈를) 다치게 되었다.”(창세 32,25) 사람의 엉치뼈는 우묵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그래서 엉덩이뼈를 ‘엉덩이의 카프’라고 한 것이다. 이밖에도 우묵한 접시도 카프라 했고(민수 7,14; 1열왕 7,50 등) 때로 발바닥도 카프라고 했다.(여호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