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종이 위에
날마다 짬 내어 준주성범 한 구절씩 정성 다해 적으며 때때로 얼굴 붉어집니다 아침마다 기도 속에 하느님 보시기에 이쁜 삶 살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기도하면서도 돌아보면 하느님 닮기에는 참 먼 삶을 살 때가 많았습니다 하느님 안 보이시게 잠깐 숨고 싶을 때가 하느님 좀 먼 곳으로 잠깐 출장 보내고 싶을 때가 인간 사랑이 하느님 사랑을 덮어버릴 때가 생각보다 많았음에 고개 숙입니다 오늘 저녁 나의 목숨 거두어 가실지도 모르는데 냉장고에 한가득 찬 음식을 보며 문득 하늘나라 내 창고엔 무엇이 들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어 고개 숙입니다 이 준주성범 한 권 다 쓰고 나면 이승의 곳간에 쌓은 재물 모두 하늘나라 창고로 옮겨 질라나? 인간 세상 모든 재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여질라나? 오로지 주님 하나로 부자 될 수 있을라나? “하느님! 준주성범 다 쓰고 나면 더 이상 마음속에 재물도 사람도 있을 수 없는 나 그리하여 당신 하나로 배부를 수 있는 나 그런 나로 만들어 주소서!”구경분(아우구스티나·인천교구 강화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