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선교지에서 온 편지 - 남수단] 벌써 1년…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상권 신부
입력일 2017-07-25 수정일 2018-01-22 발행일 2017-07-30 제 3055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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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신부
남수단에 온 지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해 독립기념일 무렵 주바에서 큰 사태가 벌어졌고 저는 다행스럽게 공항이 닫히기 전에 아강그리알로 올 수 있었습니다. 하루만 늦어졌어도 아마도 우간다 난민캠프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어야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깊이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을 선교지에서 보냈습니다.

모든 봉사자가 떠나고 정지용 신부님과 표창연 신부님마저 계약 기간을 종료하고 떠나신 후 아강그리알과 쉐벳은 저와 이상협 신부님만 남아서 조용하고 적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주일 오후면 왁자하게 모여 함께 운동하고 수다도 떨며 보내던 주일의 만남이 이제는 단촐해졌습니다. 약간의 허전함이 한동안 있었지만, 각자 본당에서 혼자 지내는 일이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어제는 한 달 전쯤 땅콩을 심은 밭에 나가보았습니다. 그 사이에 땅콩이 많이 자라 꽃까지 피웠습니다. 대신 잡초들도 함께 자라 온통 풀밭이 됐습니다. 그래서 일꾼들과 함께 잡초 제거 작업을 하는데, 성모회원들이 도와주겠다며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본당 성모회원들은 이맘때나 추수할 때 항상 와서 도와주곤 했습니다. 너무나 고마워 사제관으로 돌아가 홍차와 비스킷을 준비했습니다. 홍차는 이들의 취향을 존중해서 설탕을 충분히 넣어주었습니다. 이들은 음식을 참 달고 짜게 먹습니다.

땅콩밭에서 잡초 제거를 돕고 있는 아강그리알본당 성모회원들.

홍차와 과자를 준비해서 밭으로 가보니 서로 노래를 부르며 한참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한 사람이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이어서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이 장면이 너무나 익숙했습니다. “이 소리는 아강그리알 사람들이 땅콩밭을 매며 부르는 노래 소리입니다.” 마치 모 방송에서 한때 자주 보여주었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를 보는 듯이 너무 친근했습니다. 이들의 ‘노동요’인 것입니다.

노래의 힘인지 그 큰 밭이 금세 깨끗해졌습니다. 밭을 매는 인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는데 작은 여자 아이가 어른들 틈에 함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엄마를 따라온 것입니다. 너무나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사를 건넵니다. 아이도 환히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데, 아이의 웃는 얼굴이 정말 예뻐 보입니다.

항상 내가 뭔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저도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받고 있습니다. 선교사로서 내가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가 이들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잠시 묵상해보니, 제가 선교한다고 여기에 와 있지만, 오히려 선교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환대와 존경과 사랑이 선교사인 저를 예수님 사랑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벌써 일 년. 아강그리알 속으로 점점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씩 피부색과 상관없이 얼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선교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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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