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왜 슬퍼하느냐?

이연세 (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입력일 2017-07-25 수정일 2017-07-25 발행일 2017-07-30 제 305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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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늦가을의 어느 날, 겨울을 재촉하는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날은 마침 평일미사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사무실을 대강 정리하고 천천히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세찬 비바람에 낙엽은 마구 떨어져 길 위를 어지럽혔지만 저는 행복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성당에 도착하자 썰렁함이 느껴졌습니다. 의당 성당 주차장에 신자들의 차가 있어야 하나 신부님 차만이 덩그렇게 주차돼 있고, 신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마침 군종병마저 휴가를 떠났고 병사들도 부대 사정으로 미사 참석이 제한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텅 빈 성전은 적막하고 쓸쓸하기까지 했습니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그러자 천장유리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빗방울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뒤쪽에서 신부님이 입장하는 기척이 들렸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신부님을 바라보니 한 손에는 기타가 들려 있었습니다.

‘신부님 한 분! 신자 한 명!’ 항공안전을 기원하는 미사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신부님 특유의 힘이 있으면서도 느리고 또박또박한 음성에는 그날따라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미사 중간중간 성당 천장의 허공을 무심하게 응시하기도 했습니다. 강론시간이 됐을 때, 신부님은 강론 대신 기타를 연주하며 ‘왜’라는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왜 슬퍼하느냐/ 왜 걱정하느냐/ 무얼 두려워하느냐/ 아무 염려 말아라/ 큰 어려움에도 큰 아픔 있어도/ 이젠 아무 걱정하지 마/ 내가 널 붙들어주리/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실망치 말고 나를 보아라/ 나는 너의 하느님이라.’ 신부님의 성가소리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젖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목소리도 젖어들었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예수님의 저 유명한 ‘참행복’에 대한 성경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4) 아마도 신부님은 미사에 신자가 한 명밖에 참례하지 않은 것이 속상했을 것이고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까지 더해져 울적한 마음에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것 같았습니다.

미사가 끝났을 때 신부님은 “제 기타 연주가 형편없죠. 실력이 잘 늘지 않습니다”라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는 사목회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나 은혜롭고 거룩한 미사였습니다. 어떻게 신부님과 1대1의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을까요. 세례를 받은 이후, 많은 미사를 봉헌했지만 그때만큼 기억에 남는 거룩한 미사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 혼자 미사의 은총을 모두 받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 비록 오늘은 두 명이었지만 장병들의 우렁찬 성가소리가 울려 퍼지는 비승성당을 소망해봅니다.

이연세 (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