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갈 곳이 없어요! / 하종은

하종은(테오도시오) 카프성모병원 알코올치료센터장
입력일 2017-07-25 수정일 2017-07-25 발행일 2017-07-30 제 305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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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를 안전하게 수용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이들이 인권을 존중받으며 우리 곁에서 사는 것이 옳은가?” 그 누구도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범인에게 조현병 치료병력이 있는 것이 밝혀지자, 법무부와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행정입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지난 5월 30일 개정된 정신보건법으로 인해 전국 정신 병원 7만 명 정도 입원 환자 중 많게는 1만 명 넘는 환자가 퇴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자 인권 존중을 위해 입원은 까다롭게, 퇴원은 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정신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합의를 이루지 못한 탓에 정부 정책도 갈팡질팡한다.

약자들의 친구이고 스승이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바리사이들이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대답하신다.(마태 9,10-13 참조)

아마 예수님이라면 정신장애인이 희생제물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도우셨을 것이다.

사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신장애인은 위험하지 않다. 지난 2011년 대검찰청은 범죄 분석 보고서에서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이 비정신장애인의 10%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퇴원 후 약을 잘 먹는 조현병 환자나 술을 끊은 중독자는 그 누구보다 선량하고 좋은 이웃이다. 하지만 이들이 퇴원 후 기댈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대화할 친구도 없고, 취직할 직장이나 여가를 보낼 방법도 없다. 문제는 그들이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다 치료를 포기하거나 다시 술을 입에 댈 때 벌어진다.

여태껏 많은 환자들이 정신병원에서 지냈던 이유는 사실 그것이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신질환 관련 예산은 1인당 45달러로 미국과 영국의 6분의 1수준이다. 정신건강증진센터 직원 1인당 80명 정도의 환자를 관리하고 있는데 이는 선진국에 비하면 2~3배 많은 수준이다. 사회복귀시설이나 재활시설에 대한 투자는 미비하다.

사회 복귀에 대한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 단지 입원의 문턱만 높인다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만 빼앗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하루 종일 혼자 지내다 아파트 공터나 배회하고 있어요.” “약을 먹는 것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 보니 집에 수십 봉지가 남아 있네요.” “선생님 기초 생활 수급권을 유지하려면 취업을 하면 안 된대요.”

퇴원 후 통원 치료를 하는 많은 중독자들이 성공적으로 단주를 유지하고 있다. 조현병이나 조울증 환자들도 급성기 증상은 대부분 잘 관리가 되고 있다.

정작 그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다른 곳에 있다. 최근 한 환자는 갈 곳이 없다며 중간 단계로 사회복귀시설 입소를 선택했다. 그곳에서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도 나누고, 사회생활도 익히고, 일자리도 구하다 보면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설에 입소하면 수급비가 끊겨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를 포기했다. 그는 집에서 버틸 때까지 버티다 다시 입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병원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이들의 삶이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사회의 냉대와 편견이 그들을 더 힘겹게 한다. 우리가 정말 정신장애인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면 그들을 반길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격리를 대체할 재활 프로그램은 환자의 상태에 맞추어 여러 단계로 다채롭게 마련되어야 한다. 그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 결국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길이기도 하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다양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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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은(테오도시오) 카프성모병원 알코올치료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