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 노성호 신부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
입력일 2017-07-18 수정일 2017-07-18 발행일 2017-07-23 제 305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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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예비신학생 모임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춥고 눈이 많이 내린 어느 겨울날, 안성 미리내성지에서 역사적인 첫 모임을 가지면서 사제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게 됐습니다. 매달 한 차례씩 있는 모임에 성실히 참가한 것은 기본이고, 나름 사제가 되는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가면서 한 해 한 해 점점 신학교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학년이 올라갈 때면 함께 모임을 시작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들은 저보다 공부도 잘 했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았으며, 외모도 출중해 ‘나중에 저런 친구가 신부님이 되면 정말 신자들이 엄청 늘어날 것 같다’ 싶은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 친구들은 저를 포함해 단 9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뽑아주셨구나!’

그래서 저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저를 뽑아주신 분 앞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제품을 받으면서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예레 1,7)라는 말씀을 서품성구로 정하고 사제로서 주님께서 주신 소명에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 주교님을 통해 주님께서 파견해주시는 사목지가 어디든지 그곳에 애정을 쏟았고, 열정적으로 사목해 가면서 신자들을 사랑하고 아껴주며 파견된 자로서 성실히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든 삶은 주님께서 저에게 거저 주신 것이라 믿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게을리하거나 하느님의 백성을 소홀히 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은 그렇게 거저 받았다고 느끼면서 살아갈수록 또 다시 거저 받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점점 하느님과 교우들의 사랑이 저를 감싸면서 채워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저의 삶도 많은 축복과 평화로 차고 넘치게 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제로 살아가면서 첫 마음으로 품었던 애정도, 활화산처럼 뜨겁게 타오르던 열정도, 농부의 굵은 땀방울을 능가할 것만 같았던 성실함도 차츰차츰 사라지고 식고 소멸되는 느낌을 받는 날이 많았습니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사랑하는 일이 참으로 힘겨운 일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고, 교우들을 향한 강한 열정으로 온몸과 마음을 불사르듯 그들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오히려 그들이 날카로운 부메랑이 돼 제 심장에 비수를 꽂는 나날들도 많았습니다. 또한 바쁘고 빠듯한 사목 생활의 일정은 제 육신을 살 찌웠을지는 모르나 제 영혼을 허기지고 목마르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성무일도에 손이 가지 않는 나날들과 묵주를 잡으려 노력하지 않는 시간들이 늘어갔고, 성실히 준비하던 강론도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살아가야 했습니다. 아니, 살아내야만 했습니다. 결코 평탄치 않을 길 위에서 저를 구해주실 분이 예수님이심을 믿었기에,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마태 10,16)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리고 저에게 주신 사랑이 진정 감사했기에 견디고 또 견뎌야 했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