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성가의 기쁨] 김정식 로제리오 (하)

신동헌 기자
입력일 2017-07-18 수정일 2018-04-25 발행일 2017-07-23 제 305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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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의 무서움, 만원버스 속 짜증까지 봉헌

■ 예수 내 작은 기쁨

한밤중 불빛 하나 없는 논길을 걸어본 사람은 별빛의 아름다움을 알 것이다. 1989년 11월 30일 프랑스 시골길을 걷던 김정식(로제리오)씨가 경험한 것처럼 말이다.

“당시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공부할 때였습니다. 함께 공부하던 단원들과 대림시기에 꼭 바치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밤샘기도예요. 파리를 벗어나 시골에서 혼자 1시간가량 떨어진 성당을 찾아가 기도하고 다시 돌아오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가 출발한 시간은 새벽 2시였죠.”

가로등 하나 없는 밤길을 걸어가는 동안 기쁨으로 가득 찼다. 쏟아질 듯한 별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어요. 순간 무서움이 찾아온 것이었죠. 그런데 무서움이 찾아옴과 동시에 ‘제가 영혼의 밤길을 갈 때 함께 해 주십시오’라고 청했다는 것이 기억났어요. 예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서움은 곧 평화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떼제공동체 창설자 로제 수사가 제게 건넨 ‘예수는 나의 기쁨이고 평화이다’는 말이 떠올랐어요.”

로제 수사는 힘들 때 이 말을 기억하라며 불어로 속삭였다. 그 말이 은총의 순간을 만나 곡의 시작이 됐다.

“‘작은 기쁨’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은총으로 곡을 만들기에 왜 ‘작은 기쁨’이라는 표현이 나왔는지 곰곰이 묵상해 보았죠. 의도하고 쓴 것이 아니었거든요. ‘큰 기쁨’이라 표현했다면 소박하고 가난한 기쁨을 기억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작은 기쁨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죠.”

■ 나를 따르라

성가는 기도 중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홀로 성당에 앉아 감실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중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불현듯 떠오르기도 한다. 만원 버스에서도 그렇다.

“1988년이었어요. 만원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었는데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될 만큼 사람이 많았죠. 메고 있던 기타와 가방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사람이 왜 이리 많아’하며 짜증이 올라왔어요. 나를 비롯한 이 세상에 대해 짜증이 올라왔고 복잡한 삶에 대한 원망이 들었죠.”

그 순간 ‘나를 따르라’라는 성가가 떠올랐다. 아니, 떠오른 것이 아니라 ‘들려온’ 것이었다. 만들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짜증이 묵상으로 그리고 성가로 변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세상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뒤늦게 했어요. ‘그물을 버린다’는 것은 생계수단을 버리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리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적어도 버릴만한 것을 버리면서 사는 삶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예수님을 따르면서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신동헌 기자 david983@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