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종교개혁 500주년, 마르틴 루터를 다시 보기 / 송용민 신부

송용민 신부 (주교회의 사무국장·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7-07-18 수정일 2017-07-18 발행일 2017-07-23 제 305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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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마르틴 루터(1483~1546)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꼭 500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다. ‘종교개혁’ 사건을 바라보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가톨릭은 종교개혁을 교회 분열의 원인으로 본다. 또 개신교가 참된 가톨릭교회에서 분열돼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격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난해왔다. 교회 역사가 요한네스 코칼레우스(Johannes Cochaleus, 1479~1552)는 루터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는 “배교한 수도자, 그리스도교 세계의 파괴자, 윤리를 저버린 타락자, 이단자”라고 규정했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가톨릭신자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

반면 개신교인들은 종교개혁은 복음의 재발견이고, 믿음의 확고함과 신앙의 자유를 얻은 것이며, 중세의 부패한 가톨릭교회로부터 복음적인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기회였다고 강조한다. 당연히 개신교인들에게 마르틴 루터는 복음의 증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언뜻 생각하면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500년이란 해묵은 갈등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가톨릭교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교회 개혁과 쇄신,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면서, 치유되지 않을 것 같았던 개신교와의 화해의 물꼬가 트였다.

20세기 루터에 대한 가톨릭의 새로운 연구는, 루터를 신실한 종교적 인물이며 양심적인 기도의 사람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공의회는 “교회 자체를 세우고 교회에 생명을 주는 요소나 보화들 가운데에서 어떤 것들, 오히려 탁월한 많은 것들이 가톨릭교회의 눈에 보이는 울타리 밖에도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와 갈라진 형제들 안에서도 “하느님의 기록된 말씀, 은혜로운 삶, 신망애,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성령의 다른 내면적 선물들 및 가시적 요소들”(일치교령 3항)이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지난 1999년, 루터교 세계 연맹과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는 종교개혁의 원인이 됐던 의화(義化) 문제가 더 이상 교회 분열의 원인이 될 수 없음을 선언한 “의화에 관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어 2013년에는 종교개혁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신학적 논쟁들을 풀어낸 뜻깊은 공동 선언문 「갈등에서 사귐으로」(From Conflict to Communio)를 발표한 바 있다. 올해 한국의 천주교와 개신교 신학자들 16명은 이 문서를 함께 번역하고 출간하면서, 여전히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교회의 일치를 향한 염원을 밝혔다.

2003년 독일에서 학업을 마치고 한국의 신학 강단에 서면서부터 개신교와의 일치 운동에 참여해온 필자는, 각종 강의와 글을 통해 교회 일치의 당위성과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한국 가톨릭교회의 대다수 사목자와 신자들은 교회일치에 대해 낯설어 하고, 개신교에 대한 해묵은 편견과 오해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물론 한국 개신교계에서는 종교개혁 당시의 가톨릭교회보다, 현재 자신들이 더 타락한 교회라는 자조 섞인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개신교계의 주류가 되는 교단들은 가톨릭교회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이들에게 교육받은 개신교 신자들은 보편교회의 일치 흐름과 무관하게 성장 중심의 교회론에 갇힌듯하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죽음과 삶의 부조리를 넘어서 부활의 희망을 지금-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과거 종교개혁의 역사적 상처에 사로잡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갈라진 개신교와의 편가름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분열의 상처를 남긴 종교개혁이란 과거의 사건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과거를 기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 다르게 해석한 역사를 이야기하기보다, “그 역사를 다르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는 한 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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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민 신부 (주교회의 사무국장·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