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93) 세상에나… 이렇게나… 놀라울 줄이야!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7-11 수정일 2017-07-12 발행일 2017-07-16 제 305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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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신자 단체 분들을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인솔 책임자였고, 제주도를 잘 아는 분도 섭외해 알려지지 않은 명소 추천과 그곳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렸습니다. 사실 제주도에서는 변화무쌍한 날씨가 여행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합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정 중 셋째 날 오후 프로그램은 ‘군산오름 탐방’이었습니다. 제주도에는 368개(학자들에 따라 450개까지 있다고도 합니다)의 오름이 있지만, 그중에 ‘군산오름’ 전망이 가장 좋다고 들었습니다. 또 ‘군산오름’의 특징 중에 하나는, 정상에 서면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도의 서쪽 지역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넓고 푸른 바다의 장엄한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군산오름 탐방’을 진심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날, 날씨는 흐리고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오름 근처에 갔을 때에는 안개가 더욱 짙어져, 오름 정상에서 과연 무엇 하나 제대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앞사람과의 간격을 좁혀 걸었고, 천천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힘들게 오름을 올랐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군산오름의 정상!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군산오름 탐방’을 추천한 형제님은 안개 속에서도 여기저기 방향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 뒤에 보이는 곳은 한라산 정상으로… 그리고 주변에는 이러 저러한 오름이 있고… 저기 앞으로는 송악산이 보이고, 그 옆에는 삼방산이 있으며… 그 앞에는 형제섬이 있으며… 저 멀리에는 비양도와 가파도가 펼쳐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그 형제님은 ‘군산오름’이 가지고 있는 찬란한 풍경을 설명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그저 그런가 싶었고, 인솔 책임을 맡았기에 겉으로는 장단은 맞췄지만, 속으로는 주차장까지 잘 내려갈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1년이 지난 후, 제주도 동창 신부님들과 휴가를 왔습니다. 특별한 휴가 계획이 없던 동창 신부님들은 한 신부님의 제안으로 군산오름에 가기로 했습니다. 걷기 싫어하는 나만 혼자 마음속으로, ‘에이…, 볼 것도 없을 텐데!’

그렇게 다시 찾아간 ‘군산오름’. 그런데 그 날은 날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땀 흘리며 정상에 올라간 순간, 나와 동창 신부님들은 그냥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놀라울 줄이야!’

그 날, 날짜까지도 잊을 수 없습니다. 7월 3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눈으로 보이는 것만 믿으려 했던 성 토마스 사도의 모습과 ‘군산오름’ 정상에서의 내 모습이 너무나도 비슷했습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친절한 설명을 해준 형제님의 모습까지도 생각났습니다. 돌아오는 길, 어쩌면 하느님 나라는 안개가 자욱한 ‘군산오름’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 생애 마지막 날에 안개를 걷어낼 하느님 나라. 그곳을 보고, 모두가 이렇게 말하겠지요. ‘세상에나… 이렇게나… 놀라울 줄이야!’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