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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예방주사

이연세(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입력일 2017-07-11 수정일 2017-07-11 발행일 2017-07-16 제 305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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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피우고 싶었던 어느 주일 ‘나에게 주일미사는 어떤 의미일까?’를 묵상했습니다. ‘은총, 참회, 감사, 성찰, 용서, 고해, 보속, 다짐’ 등의 단어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예방주사’라는 다소 의외의 단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습니다.

1970년대 시골 초등학교 시절, “얘들아! 오늘 예방주사 맞는대” 이 한 마디에 학교는 쑤셔놓은 벌집이 되곤 했습니다. 그 당시 일 년에 몇 번 맞는 예방주사는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주사 맞는 것이 익숙지 않았기에 예방주사는 두려움을 넘어 공포였습니다. 심지어는 예방주사 맞는 것을 보다가 기절한 아이까지 있었습니다.

요즘은 주사 맞는 것이 흔한 일이 됐지만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렇다면 예방주사는 왜 맞을까요? 예방주사는 백신을 인체에 주사해 감염 및 전염성 질환의 면역력을 높여 항원체를 생성하고 외부로부터 세균의 침입을 예방함으로써 신체의 건강을 보호할 목적으로 실시합니다. 그러면 육체적인 예방주사만 필요한 것일까요?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예방주사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너무 나약하다 보니 수많은 유혹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가 어렵습니다. 한 예로 인터넷을 통해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사진과 야동을 보기도 하고 사행성 게임에 빠지기도 합니다. 10여 년 전 함께 근무했던 한 간부는 인터넷 도박에 중독돼 빚을 지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가족과 지인들에게 커다란 아픔을 줬습니다.

신앙은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의 나약한 정신건강을 지켜주는 방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매 주일마다 봉헌하는 주일미사는 ‘유효기간 일주일의 정신 건강용 예방주사’가 될 수 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며 지난 일주일간 지은 죄를 참회하고, 건강하게 다시 주일미사를 봉헌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한 주를 하느님 말씀 안에서 선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기회로 활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신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예방주사의 두려움과 아픔을 참고 견딥니다. 이렇듯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미사봉헌에도 예방주사 접종 이상의 인내와 의지가 요구됩니다. 마음껏 병영의 자유시간을 즐기고 싶은 유혹을 떨치고 일어나야 하고,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의 손짓도 물리쳐야 하며, 전우들과의 즐거운 단체운동도 미뤄야 합니다.

한 자료에 의하면, 천주교 신자는 늘어나지만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를 영하는 신자 수는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격언처럼,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주일마다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을 찾았더니 내게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에 넘치고 너희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 34,5-6)

주일인 오늘, 저는 아내의 손을 잡고 기쁘게 예방주사를 맞으러 성당에 갑니다.

이연세(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