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민범식 신부의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우리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n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
입력일 2017-07-04 수정일 2017-07-04 발행일 2017-07-09 제 3052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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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소중한 존재’ 깨달아야

찬미 예수님.

지난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사랑받으면서 지내셨나요, 인정받기 위해 애쓰면서 지내셨나요? 지난주에 사랑받는 것과 인정받는 것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서 둘 중 어느 것을 더 원하시겠는지 여쭈었었는데요, 두 모습의 차이에 공감하는 분들이시라면 아마도 인정받기보다 사랑받기를 더 원하셨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인정보다는 사랑받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좋아. 그럼 나도 사랑받는 것을 더 원하면서 살아갈 거야!’ 선택을 하긴 했지만, 또 이런 물음이 뒤따라오지 않던가요? ‘그럼 인정받는 것 말고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자,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사랑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알았으니 되었고, 그럼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네? 우리 자신이 먼저 사랑하면 된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 자체가 이미 잘못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사랑받는 것은 무언가를 하고 안 하고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노력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인정이죠. 여전히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물음 자체가 이미 잘못된 물음이라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만 있으면 될까요? 가만히 있어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갑자기 뭐가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죠? 자,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실 우리가 인정 말고 사랑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내 스스로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한’ 노력입니다. 여태까지는 사랑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해서 사랑받게 되는 그런 노력이 아니라, 이미 내가 예전부터 사랑받고 있었고 그래서 지금도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한’ 노력인 것입니다.

한 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세요. ‘누가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내가 누구에게서 사랑받고 있을까?’ 어떠세요? 떠오르는 분들이 계신가요? 어떤 분들은 쉽게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할 테고 또 어떤 분들은 고개를 갸웃갸웃하기도 하실 겁니다. 어쩌면 잘 안 떠오른다 하시는 분들이 더 많으실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잘 안 떠오른다고 할 때 그건 정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깨닫지 못해서 그러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겁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크고 작은 이유들이 우리 삶 안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이 어떤 거창하고 대단한 사랑은 아닙니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를 사랑할게’ ‘네가 나의 전부야!’ 고백하는 사랑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경험들과 관계들 안에서 만나게 되는 눈빛, 일상적인 대화들, 작은 몸짓 하나, 이런 것들에서 느껴지는 사랑인 것이죠.

제가 오랜 시간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매달 있는 동기 신부들 모임에 몇 년 동안 나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연락을 주고받는 동기들도 있지만 더 많은 이들의 경우는 몇 년에 한 번 휴가 들어왔을 때에야 만날 수 있었죠. 공부 마치고 귀국하기 전 마지막 휴가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들어와서 동기 모임엘 갔는데 그중에는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 만에 만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난 것인데도 마치도 지난달 동기 모임 때 만났다가 다시 만나는 것처럼 저를 대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범식이 너 왜 이렇게 동기 모임에 안 나오는 거야? 자주 좀 나와.” 제게 농담들을 건넸죠. 그런데 그런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아, 내가 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연락도 잘 못하고, 그렇다고 휴가 들어올 때 뭔가 선물을 사온 것도 아닌데 말이죠. 제게는 그 순간이 ‘사랑받고 있음’을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그 휴가 동안에 제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무언가를 잘했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실수하고 잘못했을 때 이런 체험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제 스스로는 성에 안 차는 제 모습인데도 ‘괜찮아’ 하면서 저를 받아들여 주는 이들의 말과 눈빛 속에서 저는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크고 거창한 사랑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꼭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하루를 지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 안에서도 우리는 내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 나의 존재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부터 사랑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이미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생활성가 중에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CCM으로 만들어져 불리는 노래인데요, 노랫말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원곡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제 임의로 ‘하느님’으로 바꿔 표기했습니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느님의 사랑이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

네,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사랑받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소중한 존재로 사랑받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그걸 깨닫게 해 준 누군가가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뭔가 대단한 사랑이어서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 안에서도 내가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고 있는 사랑의 근원은 당연히 하느님이십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직접 주기도 하시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우리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 다양한 일들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그 사랑을 우리는 깨닫기만 하면 됩니다. 사랑받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 노력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니까요.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n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