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온유하고 겸손한 삶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07-04 수정일 2017-07-04 발행일 2017-07-09 제 305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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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일 (마태 11,25-30)

오늘 제1독서에서 즈카르야는 평화를 가져다줄 메시아에 관하여 예언합니다. 메시아가 오면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입니다(즈카 9,9-17). 포로가 된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괴롭히던 이들을 심판하시고 정화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전쟁을 완전히 없애시고, 온 민족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니, 주님의 통치하심은 온 세상 끝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즈카르야 예언자는 이런 일을 시작하는 메시아야말로 진정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 힘 있는 임금이심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분의 모습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힘으로 온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시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우리말로 “겸손하다”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는 “아니”라는 단어로 본래 핍박받고, 가난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진정 힘이 있으신 그분께서 가난한 모습으로, 핍박받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는 말입니다.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칠십인 역본은 이 “아니”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프라위스”라고 번역하는데, 프라위스는 “친절하고 온유한”이라는 의미를 지닌 형용사입니다. 흥미롭게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온유하다”로 번역된 말이 바로 “프라위스”입니다. 이렇게 되면 오늘 복음은 예수님 당신이 바로 즈카르야 예언자가 예언하던 그 메시아임을 밝히는 대목이 됩니다. 예수님 스스로 당신이 바로 어린 나귀를 타고 겸손되이 오시어 세상에 참된 평화를 가져다주는 메시아라는 점을 밝힌 대목입니다.

실제, 예수님께서는 마태 21,7에서 암나귀와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 일이 즈카 9,9와 이사 62,11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 그리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딸 시온에게 말하여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짐바리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마태 21,5) 이렇게 예루살렘에 올라오신 그분께서는 “아니”라는 말이 알려주듯이 핍박받고 철저히 가난한 모습으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온유한”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당신에게서 배워야지만 비로소 안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멍에는 편하고 짐이 가볍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핍박받는 모습, 가난한 모습을 보면 그분의 멍에가 그리 편하고 가벼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참 행복을 선언하시면서 당신처럼 “온유한” 사람들만이 진정 약속된 땅을 차지하고, 그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것임을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마태 5,5).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며, 그 이름 때문에 박해마저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5,11-12). 오늘 복음은 이러한 삶이 세상 관점에서 볼 때 힘들어 보이지만, 실은 가장 편하고 가벼운 짐을 지는 삶임을 강조합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 지혜롭고 똑똑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삶은 어리석어 보일 것입니다. 이런 삶이 참되다고 믿는 것은 오직 철부지들에게나 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은 이 길을 기꺼이 따라나섭니다. 어찌 보면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만이 예수님의 길을 따라나서는 철부지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이야기하듯이 하느님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머무는 선택된 이들만이 성령 안에 있게 되고,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어 진정 온유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이들만이 진정 부활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 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복음환호송)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