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우리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양기석 신부 (수원교구 송전본당 주임·수원교구 환경위원회 위원장)
입력일 2017-07-04 수정일 2017-07-05 발행일 2017-07-09 제 305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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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의 핵발전소 중 1978년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했던 고리 1호기가 2017년 6월 19일 0시에 영구히 가동을 멈췄다. 같은 날 오전 10시에 열린 공식 퇴역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탈핵”이란 단어를 수차례 언급했다. 그러면서 ▲신규 핵발전소 건설계획 전면 백지화 ▲핵발전소의 설계 수명 연장 금지 ▲월성1호기는 전력수급상황 고려해 가급적 빨리 폐쇄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 공정률, 투입 비용, 보상 비용, 전력 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한 사회적 합의 도출(폐쇄 결정) ▲원자력 안전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위원회로 승격 및 다양성과 대표성, 독립성 강화 ▲탈핵로드맵 마련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전면 중단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10기 폐쇄 임기 내에 완료 ▲산업용 전기 요금 재편 ▲에너지 고소비 산업구조 효율화 및 산업용 전기요금 재편 ▲친환경 에너지 세제 합리적 정비 ▲탈핵, 탈석탄 로드맵과 함께 친환경 에너지정책을 수립 등을 제시했다.

핵산업계, 그리고 공생관계에 있는 원자력학계에서는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발전단가가 저렴하다고. 그리고 세계 최고의 핵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고,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기에 핵발전소를 수출하면 수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핵발전(원자력) 대세론을 펴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일관되게 이어져왔다.

그러나 핵산업계는 폐쇄성이 강한 영역이다. 한 번의 사고에도 그 피해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쓰리마일(미국 1979), 체르노빌(舊 소련 1986), 후쿠시마(일본 2011) 핵발전소 사고로 증명됐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핵산업계는 잦은 고장과 사고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며 밝히지 않고 은폐하기 급급했다.

이번에 폐로 된 고리 1호기를 포함한 핵발전소들의 경우에도 수백 회에 걸친 고장과 불량부품 납품 비리, 근무태만을 넘어 직원들의 마약복용이 밝혀져 안전불감증이 그 어느 영역보다도 심한 곳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고의 전문가들에 의해 운영되기에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실상은 대형사고가 나지 않은 것 자체가 기적이다.

여기에 더해 전 세계 최초로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의 방사능 피폭 사례를 인정한 ‘균도네 소송’과 경주 월성 핵발전소가 위치한 나아리 지역의 5세 어린이의 체내에서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됐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대형사고가 일어나지 않아도 방사능으로 인한 위험성이 상존하는 위험시설이 핵발전소이다.

또한 전 세계의 친환경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정책에 비추어 볼 때 핵산업은 사양산업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핵발전이 아닌 친환경재생가능에너지 중심의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운전되고 있는 핵발전소는 580여 기이지만, 어떤 나라도 핵발전소에서 나온 고준위핵폐기물을 처리할 방폐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경주의 방폐장은 중저준위핵폐기물처리장이다. 고준위핵폐기물은 지하수가 흐르지 않고, 지진에 영향을 받지 않는 통암반층 수백 미터 지하에 1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를 실현한 나라는 없다.

이러한 상황들을 보면 핵물질을 에너지로 사용하고, 이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자체는 마치 ‘선악과’를 욕심낸 최초 인류의 모습을 너무 닮았다. 낙원을 잃게 한 인간의 죄는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리를 탐낸 것에서 시작됐다. 현재도 감당하기 어렵고, 미래세대조차 감당할 수 없는 핵발전소를 이제 포기할 시점이다. 이것이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생태적 회개’다. ‘탈핵사회’로의 이행은 주님께 대한 또 다른 신앙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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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석 신부 (수원교구 송전본당 주임·수원교구 환경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