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마귀가 전교했어!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
입력일 2017-07-04 수정일 2017-07-04 발행일 2017-07-09 제 305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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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어요? 더운 날씨에 다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무엇을 하시든 천주님의 축복 속에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저에게는 사랑스런 동생 신부님이 있어요. 서부본당 주임으로 있는 노중호(프란치스코) 신부님이지요. 천주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로 저희 둘 다 사제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됐는데요, 오늘은 저희 형제가 천주님을 알게 되고 천주님과 사랑에 빠지게 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해요. 놀랍고도 형언할 수 없는 천주님의 섭리가 저희 형제와 함께 하셨거든요. 교우님들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천주님의 손길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미신이 득실거리는 미신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성당을 다니며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대부분 절에 다니면서 때마다 굿판을 벌이는 동네, 마을 어귀에는 성황당과 보호수가 있어 앞다투어 그 곁에서 안녕을 빌었던 마을에서 태어났지요. 그랬던 동네에 천주님의 손길이 내리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시집을 오실 때부터 온갖 병을 안고 사셨던 저희 할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시집을 오신 할머니께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정말 많은 시간을 고통 중에 계셨는데, 할머니 표현에 의하면 ‘하늘이 노랗게 되고, 땅이 빙글 돌고, 오장육부가 끊어지는 것’ 같았던 고통을 자주 겪으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추억하시면서 말씀하실 때면 진저리를 치실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무당을 불러 거하게 한 상 차리고 굿판을 벌이기만 하면 금세 멀쩡해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할머니께서는 병상에서 일어나셔서 굿판 구경을 온 사람들의 시중까지 들곤 하셨답니다. 하지만 굿이 좋아도 한 두 번이지, 어려운 형편에 매번 무당을 부를 수는 없었고, 굿의 효력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 “죽을 때 죽더라도 성당이나 가보고 죽을랍니다!” 하셨답니다. 미신이 뿌리 깊은 동네였기에 ‘성당’은 금기어였습니다만,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는 부지깽이같이 깡마른 몸으로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셨고, 얼마 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전에 동생 신부님이 이런 말을 했었답니다. “세례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 맞습니다. 세례 후 할머니는 정말 건강해지셨고, 다시는 그 어떠한 병마도 할머니를 괴롭히지 못했습니다” 하고요.

할머니를 통해 천주님의 놀라운 손길을 체험한 저희 온 가족은 그때부터 미신을 싹 끊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미신촌이었던 저희 동네에도 점점 교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께서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집안과 동네는 마귀가 전교했어!”

“마귀가 쫓겨나자 말 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마태 9,33)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마귀의 활약상(?)이, 악을 퍼뜨리려는 마귀의 눈물겨운 고군분투가 얼마나 천주님의 일을 앞당기며 더욱 놀랍게 만들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악은 우리를 파멸과 절망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악이 기승할수록 더욱 밝히 드러나는 것은 천주님의 놀라운 자비와 사랑입니다. 우리를 격려하시며 계속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는 천주님의 따스한 손길을 느껴보세요. 그 놀라운 섭리를.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