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로 피신 중에도 교회서적 지니고 교리 전파
1801년 박해령이 내리자 복자는 안산에 사는 사촌 매부의 집을 방문하고, 여주 숙모의 집을 찾는 등 박해를 피해 돌아다녔다. 이렇게 떠돌던 중 많은 이가 체포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복자는 산골에 숨어 지내다 이천의 친구 집에 머무르면서 박해를 피했다.
복자는 이런 피신생활 중에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다. 복자는 교회서적을 늘 지니고 다녔고, 친구에게 교리를 전하기도 했다. 또 윤유일의 사촌인 윤구손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교회 소식을 교류하기도 했다. 그렇게 박해를 피해 신앙생활을 수개월 가량 이어가던 중 복자는 포졸들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복자는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신자들을 밀고하지도, 배교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신앙생활을 떳떳하게 이야기할 뿐이었다. 복자는 박해자들 앞에서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 있으니 마음을 바꿔 신앙을 버릴 생각이 없다”면서 “죽음밖에는 따로 진술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복자는 이렇게 신앙을 증언하다 사형 판결을 받고, 1802년 1월 29일 서소문 밖 새남터에서 동료 신자들과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발자취 만날 수 있는 곳 - 양근성지
복자가 태어나고 자란 양근은 초기 한국교회 신앙선조들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퍼져나간 곳이다. 양근성지(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물안개공원길 37)는 양근 지역의 신앙선조와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있다. ※문의 031-775-3357 양근성지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