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신앙살이 세상살이] (391) 늘(?) 깨어 있어라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6-27 수정일 2017-06-27 발행일 2017-07-02 제 305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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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사님이 자신의 수련자 시절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수련소로 전화가 왔는데, 때마침 그 수사님이 식사 당번이라 주방에서 전화를 받았답니다.

“찬미 예수님. 수련자 ○○○ 수사입니다.”

그런데 낮게 깔린 중저음의 목소리로,

“나, ○○○ 주교인데, 원장님 계신가?”

순간, 주교님이라는 말에 당황한 수사님은,

“아, 예. 주교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지금 수련장 수사님을 찾아서 전화 연결을 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다음, 밭으로 가서, 수련자들과 김을 매는 수련장 수사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답니다.

“수사님, 수련장 수사님, 빨리, 빨리요, 지금, 주교님께서 수사님 찾는 전화가 왔어요.”

그러자 수련장 수사님은 급히 일어나서, 전화기가 놓여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전화를 받았답니다. 그런 다음 수련장 수사님이 주방으로 오더니,

“주교님이 아니라, 본원의 경리 담당 수사님이 전화하셨어, 생활비 문제로.”

그 수사님은 속으로, ‘분명히 주교라고 하셨는데…’라고 말했습니다.

그다음 날,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때도 주방에서 있던 그 수사님은 전화를 받았는데, “나, ○○○ 주교인데, 혹시 지금 수련장 신부님 계신가요?”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또다시 놀란 수사님은 수련장 수사님을 찾아서 전화를 연결시켜 주었는데, 수련장 수사님 말씀은,

“주교님이 아니라, 총원 비서실에서 형제들 서류 문제 때문에 전화를 했네.”

그 수사님은 속으로, ‘음…. 어제, 오늘 주교라 사칭한 전화가 두 번이나 왔었단 말이지. 그렇다면 이건 수사님들의 장난이구나. 다음에 또 전화 오면 복수를 해야지.’

일주일쯤 흐른 뒤 형제들이 운동하는 시간에 또 전화가 왔습니다. 그 날 또한 공교롭게도 그 수사님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찬미 예수님, 수련소 ○○○ 수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 주교입니다. 혹시 수련장 신부님 계시는지요?”

그 수사님은 순간, ‘또, 장난 전화? 그래, 이번에는 안 속는다.’

“아, 네. 주교님이셔요. 혹시, 어느 교구 주교님이신가요?”

“아, 예. 저는 ○○교구 보좌 주교 ○○○입니다.”

원래 그 수사님의 계획은 전화기에 대고 ‘당신이 주교면 나는 교황이다’라고 냅다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확 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마음이 찝찝해 잠시만 기다려주시라는 말을 남기고, 마당에서 족구하는 수련장 수사님을 불렀습니다.

“수련장 수사님, 전화요, ○○교구 보좌 주교 ○○○랍니다. 전화 받아 보세요.”

수련장 수사님이 방으로 가신 후 한참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진짜 주교님이었답니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더랍니다. 정말로 전화기에다 대고, ‘당신이 주교면, 내가 교황이다’라고 소리 지르고 전화를 끊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그 날 이후로 그 수사님은 깨달았답니다. 수도자는 언제나 속아 넘어가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진짜로 날마다 늘 깨어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