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민범식 신부의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인정받는 것? 사랑받는 것?

민범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n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품
입력일 2017-06-27 수정일 2017-06-27 발행일 2017-07-02 제 3051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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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기보다 ‘사랑’받는 삶이 행복합니다
사랑은 조건 없이 내 존재 받아들여지는 체험
‘너 중심’ 속에 하느님 향하는 삶 누려

찬미 예수님.

지난주에 자캐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어떠세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계시나요? 이처럼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만, 오늘은 사랑받는 것, 인정받는 것에 대해 먼저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시면 ‘어, 저는 아닌데요?’ 라고 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그 마음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가장 밑바닥에는 이런 마음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실 겁니다. 실은 저도 마찬가지죠. 사제로 살아가면서 저도 좋은 사제, 훌륭한 사제로 인정받고 싶고 또 이 연재글을 쓰면서도 ‘그 신부 글 잘 쓰더라. 내용이 좋더라’ 라는 인정도 받고 싶습니다. 신학교에 있으면서도 신학생들에게 좋은 신부로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죠.

그런데 이처럼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 인정받는다’ 하는 것이 서로 비슷해 보여서 많은 경우에 한데 묶여서 쓰이지만, 이 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가지가 사실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선,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죠? 네,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잘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잘해야 그것을 잘했다고, 그래서 좋은 사제라고, 또는 좋은 부모라고, 남편이라고, 아내라고 인정받게 되죠. 그런데 뭔가를 잘 못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당연히 인정을 못 받겠죠. 뭔가를 잘해야 인정을 받고 잘 못 하면 인정을 못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정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행위’와 관련된 차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한다면 무언가를 ‘잘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지요. 어느 하나는 잘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무언가는 잘 못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자기 자신이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인정받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불안이 늘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사랑받는 것은 어떨까요? 사랑받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아마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의 모습일 것입니다. 오랜 산고 끝에 산모가 아이를 낳게 되면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죠?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놀라워하고 축하해줍니다. 다 함께 기뻐하면서 그 아기를 축복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그럴까요? 새로 태어난 아기가 착해서? 예뻐서? 아니면 뛰어난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그러는 걸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갓난아기를 보면서 경탄하는 이유는 그저 그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받게 되는 사랑입니다. 이처럼 사랑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존재’의 차원과 연결됩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도 마찬가지죠. 자녀들을 바라보시는 마음이 어떠세요? 물론 내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좋은 대학 가고 뭐 그러면 더 좋겠다는 생각은 드실 겁니다. 하지만 그래서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것은 아니죠. 속 안 썩이고 직장 생활 번듯하게 잘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자식이기 때문에, 무얼 잘하든 못 하든 상관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이 있죠.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부모의 사랑과 환영을 받지 못하고 태어나는 아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식을 사랑하기보다는 인정하는 것에 더 마음 쓰시는 부모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고, 그래서도 우리 교회가 사회 안에서 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은 것입니다.

네, 어쨌든 이런 부분들을 예외로 하면, 이처럼 사랑받는 것은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체험이고,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사랑 받을까 못 받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지는 사랑을 받아들이고 맛보고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정받는 것과 사랑받는 것 사이의 차이점을 보게 되면, 그 뒤에 따라 나오는 결과들이 다르다는 것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를 위해 늘 애를 쓰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늘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인정받기 위해서 잘못된 방법을 쓰거나 빗나가기도 하죠. 그런데, 그러다 어느 순간 인정을 못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그 사람은 자기 전 존재가 거꾸러지는 것처럼 휘청거리게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실망하고 낙담해서 완전히 바닥으로 주저앉거나, 아니면 주변 상황이나 다른 사람을 탓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변호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달리,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훨씬 여유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죠. 물론 마음이 서운한 것은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 후회도 되고 또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을 탓하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그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존재 전체를 뒤흔들 만큼의 영향력은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록 어느 한 부분이 부족해서 인정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전체로서의 ‘나’라는 사람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습니다. 지금도 제 안에 있지요. 그리고 이 마음 때문에 우리가 뭔가를 열심히 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우리 삶을 이끌어 가는 가장 큰 힘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정받지 못할 것을 걱정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정받는 것보다 사랑받는 것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쉽게 ‘너 중심’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이미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는 ‘나’ 아닌 ‘너’를 더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바로 사랑의 삶입니다.

어떠세요? 인정받는 것과 사랑받는 것, 둘 중 어느 것을 더 원하시겠습니까?

민범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n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