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교황, 이탈리아 마촐라리·밀라니 신부 묘소 참배

입력일 2017-06-27 수정일 2017-06-27 발행일 2017-07-02 제 3051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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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 위한 교회’ 실천한 삶에 경의를…
■ 마촐라리 신부
2차 대전 때 반 파시스트 운동
‘이탈리아 본당 사제 모범’ 추앙

■ 밀라니 신부
빈자와 노동자 위해 학교 지어
사회정의 옹호 저서 금서 되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 20일 이탈리아 보촐로 소재 사도 성 베드로 성당을 찾아 프리모 마촐라리 신부 묘소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CNS

【외신종합】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들을 위해 헌신했던 두 명의 이탈리아 신부들에게 경의를 표시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두 신부는 사회활동에 적극적이었다는 이유로 교황청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교황은 6월 20일 헬리콥터를 이용해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 인근 보촐로를 찾았다. 교황은 보촐로에서 프리모 마촐라리 신부의 묘소를 참배했다. 1959년 선종한 마촐라리 신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파시스트 운동을 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강조했다.

이어 교황은 플로렌스 인근 바르비아나로 향해 로렌초 밀라니 신부의 묘소를 찾았다.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밀라니 신부는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본당에 학교를 세웠다. 밀라니 신부는 1967년 선종했다.

두 사제는 살아 있을 때 ‘이단아’로 불렸으며, 교황청은 이들의 저서를 금서로 지정해 제재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짧은 방문으로 이들을 옹호하는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사제상을 교회에 밝혔다. 검소하고, 복음의 가치에 따라 살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면서 출세에 관심 없는 사제다.

교황은 마촐라리 신부의 단출한 무덤 앞에서 잠시 침묵 중에 기도했다. 이어 교황은 교회가 양떼를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한 마촐라리 신부의 저서를 인용하며 그의 업적을 칭송했다.

마촐라리 신부는 “사제의 직무는 신자들에게 완벽한 신앙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촐라리 신부는 현재 ‘이탈리아 본당 사제의 모범’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하지만 생전에 마촐라리 신부의 행동은 교회 당국과 마찰을 빚었다. 관할 크레모나교구는 마촐라리 신부에게 허가 없이 교구 밖에서 강론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그가 발행하던 잡지가 논란을 일으키자 발행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크레모나교구는 오는 9월 마촐라리 신부의 시복시성 절차에 들어간다.

밀라니 신부는 사회정의, 특히 노동자의 파업권을 옹호했다. 하지만 교황청은 1958년 그의 사목경험을 담은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밀라니 신부가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웠다고 칭송했다. 교황은 “권리를 내세우지 않고서는 인간의 위엄도 찾을 수 없고, 따라서 정의나 자유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