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선교지에서 온 편지 - 남수단] 희망의 씨앗을 뿌리다

이상권 신부rn
입력일 2017-06-27 수정일 2018-01-22 발행일 2017-07-02 제 305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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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가 시작되고 모든 마을이 분주합니다.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건기 말미에 말라붙은 밭에 먼저 불을 붙여 1차 정리를 한 다음, 그동안 자란 나무들을 베어주면서 2차로 밭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두 세 차례 큰 비가 온 다음에야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지금이 바로 씨를 뿌릴 때입니다.

아강그리알 본당은 큰 밭을 두 군데 갖고 있습니다. 사실 합쳐도 한 가족이 겨우 먹을까 말까한 정도의 수확을 얻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저희는 이곳에 농사를 지어 가난한 이웃들과 조금이나마 나누고 있습니다. 그 중에도 성당 바로 옆에 있는 밭은 지력이 떨어져, 농사짓기에는 많이 부족한 땅입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밭에 안식년을 주고 다른 한 밭에만 농사를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아강그리알은 전체적으로 농사짓기에는 땅들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들 마을 외곽에 자리 잡고 농사를 짓거나, 더 멀리 좋은 땅을 찾아 농사를 짓습니다.

땅을 먼저 갈아야하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세워놓아서인지 트랙터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기가 오기 전에 미리 점검하고 고쳤어야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씨 뿌리는 시기를 놓칠 수 없어 일단 딩카 전통 방식으로 밭을 갈기로 했습니다. 옛날 우리 시골에서 한 것처럼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방식입니다. 소는 항상 초원에서 풀이나 뜯고 있는 줄 알았는데, 농사에 이용하는 모습은 처음입니다. 소 주인에게 품삯을 주고 밭을 갈았습니다.

딩카 전통 방식으로 소를 이용해 밭을 갈고 있는 모습.

소 주인이 소를 끌고 한 사람이 뒤에서 쟁기를 잡고 갑니다. 이 주인도 우리처럼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며 소를 인도합니다. 쟁기가 지나간 자리에 땅콩을 뿌렸습니다. 땅콩은 3개월 뒤에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많은 가정들이 부지런히 밭을 갈거나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첫 비에 일찍 씨를 뿌린 밭의 수수는 벌써 제 허리까지 자랐습니다. 이런 수수는 보통 수확철보다 한 달 일찍 수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 우기가 시작되고 씨를 뿌려놨는데, 비가 영오지 않습니다. 우기라면 최소 일주일에 두세 번은 비가 와야 하는데, 요즘은 길게는 2주 이상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가뭄입니다. 저수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강이 지나가서 물을 끌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하늘만 쳐다봅니다. 뉴스를 통해 한국도 가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상황에 하느님의 자‘비’를 기원합니다. 하늘은 자주 검은 구름으로 덮이긴 하는데 큰비는 내려주질 않습니다.

9월이면 모두들 땅콩을 수확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배고픔이 약간 줄어듭니다. 그리고 이르면 11월부터 일찍 뿌린 수수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씨 뿌리는 모습을 보니 비로소 희망이 보입니다.

하지만 뿌릴 씨조차 없는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바보같지만 다음 농사철에 뿌릴 씨까지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들이 찾아오면 지난해 우리가 농사지은 땅콩이나 수수를 조금씩 나누어 줍니다. 충분하게 나누어 주지는 못하지만 그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남수단은 땅이 넓어 싸움만 없다면 배고프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확할 것이 많아서 정말 일꾼이 부족한 상황이 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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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신부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