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신부님, 저는 볶음이 좋아요”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
입력일 2017-06-27 수정일 2017-06-27 발행일 2017-07-02 제 305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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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 노성호(요한보스코) 신부입니다. 이렇게 지면상으로나마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어 무척 반갑고, 이러한 만남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10주 동안 ‘밀알 하나’ 코너를 통해 여러분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습니다. 부디 행복하고 좋은 이야기들로 10주간이 장식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나눔으로 제가 본당 신부로서 사목하면서 만났던 사랑스런 우리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진정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마태 19, 14)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새록새록 기억하게 해 주는 우리 아이들과의 이야기입니다.

주일학교 아이들 중에 약간 산만하고 까불까불하는 개구쟁이 녀석이 있었는데, 그 녀석은 진짜 제 정신을 쏙 빼놓는 날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복사 서는 일 만큼은 아주 차분하고 정성스럽게 잘 해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녀석 때문에 미사가 완전 웃음바다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미사를 마치면서 ‘영성체 후 기도’ 때 “기도합시다!” 그랬지요. 그러자 모든 교우들은 조용히 제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녀석이 갑자기 큰 소리로 “그럽시다!”하는 것입니다. 순간 웃음이 터졌고, 한참을 웃었지요. 평소 이러저러한 이유로 핀잔만 들었던 녀석인데도 신부님이 기도하자고 하니까 그러자고, 그렇게 하겠다고 자신의 뜻과 의지를 드러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고마웠습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여럿 모아놓고 교육시킬 일이 있어서 진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진행을 할 수 없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여러 번 주의를 줬는데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약이 오르고 화가 난 나머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야! 니들 모두! 당장 나가!” 그랬더니 이 녀석들 어떻게 했게요? 정말 약속이나 한듯이 모두 한 입으로 “예, 감사합니다!” 그러더니 밖으로 나가려고 폼을 잡는 겁니다. 오히려 제가 다시 아이들을 붙잡으며 “가지 마….” 할 수밖에 없었지요.

어느 날은 예쁘장한 여자 아이가 제 수단자락을 잡아당기면서 “신부님, 저는 볶음이 좋아요”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볶음? 무슨 볶음이 좋은데?”하고 물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랬더니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있잖아요. 마태오 볶음이요. 마태오 볶음이 정말 좋아요!” 이러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참으로 각양각색입니다. 어른들의 생각과 예상을 벗어나는 놀랍고 신비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정말 많습니다. 때로는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고, 신경을 쓰게 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아이들 덕에 웃게 되는 날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분명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자들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마르 10,14)하고 말씀하셨나 봅니다. 철부지일지언정 “아버지의 선하신 뜻”(루카 10,21)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아이들이 아닐까요?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