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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제주교구 ‘신축화해길’ 열리던 날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 이창준
입력일 2017-06-20 수정일 2017-06-21 발행일 2017-06-25 제 305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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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교안 희생자 기리며 화해의 길을 걷다
다섯 번째 순례길… 황사평성지서 제주중앙성당까지 12.6㎞
평화의 섬 제주도에 주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로 난 길이 또 하나 열렸다.

제주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고용삼, 담당 고병수 신부)는 6월 17일 오전 10시 제주시 황사평성지에서 3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신축화해길’ 걷기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문을 연 ‘신축화해길’은 제주교구가 조성하고 있는 성지순례길 6곳 가운데 하나. 1901년 신축교안 때 희생된 신자들이 묻혀 있는 황사평성지를 출발해 화북성당-화북포구-곤을동-별도봉-김만덕기념관-관덕정 등을 거쳐 제주중앙성당에 이르는 12.6㎞ 구간이다.

제주교구는 이에 앞서 2012년 9월 15일 첫 번째 순례길인 ‘김대건길’(12.6㎞)을 열었다. 이어 2013년 4월 20일 ‘하논성당길’(10.6㎞)을 개통하고 이듬해 2014년 6월 21일 ‘김기량길’(9.3㎞)을 연데 이어, 대정성지-모슬포제1훈련소터-모슬포성당에 이르는 ‘정난주길’(7㎞)을 2015년 11월 14일 개통해 교회와 세상, 세상과 세상 간 화해의 길을 넓혀왔다. 마지막 제6코스인 ‘이시돌길’(18.2㎞)도 올해 안에 열릴 예정이다.

본당 신자 60여 명과 함께 행사에 참가한 임문철 신부(제주교구 동문본당 주임)는 인사말을 통해 “하느님이 허락하신 좋은 날에 육체적인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적으로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기회를 마련하면서 신축화해길을 걷자”고 말했다.

이날 새롭게 문을 연 ‘신축화해길’은 신축교안 때 희생당한 신자들의 넋을 기리는 길이다. 신축교안은 1901년 신축년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신자들과 비신자들 간 갈등과 잦은 충돌이 점차 확대돼 벌어진 전투로 수백 명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당시 민군 측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천인 출신 이재수였기에 ‘이재수의 난’ 혹은 ‘신축제주민란’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교회에서는 ‘신축교안’으로 부른다.

신축교안 당시 민군 주동자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잡으려고 제주성당으로 침입했다. 수백 명의 신자들이 성당 바로 옆 관덕정 마당에서 죽임을 당했다. 많은 시신 중 연고가 없는 시신들은 별도봉과 별도천 기슭에 가매장됐다가 1903년 제주본당 제2대 주임 라크루(한국명 구마슬) 신부와 제주 목사 간 협상으로 희생자들의 매장지로 황사평(당시는 황새앗)을 불하 받아 시신을 옮기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민군들이 제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집결한 곳이 황사평이란 점이다.

교구 평협 고용삼(베네딕토·제주 화북본당) 회장은 “이번 행사는 선조들의 신앙을 되돌아보면서 각자의 신앙을 키워나간다는 의미와 교구장 사목교서인 생태적 회개의 삶을 통해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3시간30여분에 걸쳐 교구의 다섯 번째 순례길인 신축화해길을 걷고 제주중앙성당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고병수 신부의 격려의 말과 강복으로 순례를 마무리했다.

순례자들이 신축교안 때 희생된 신자들을 가매장했던 별도봉을 오르고 있다. 제주교구 평협 제공

신축화해길 순례에 나서기 전 제주교구 황사평 순교자묘역에서 기념촬영 하고 있는 순례자들. 제주교구 평협 제공

제주교구 황사평 순교자묘역 한편에 조성된 성직자묘역을 둘러보고 있는 순례자들. 제주교구 평협 제공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 이창준 제주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