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순교자를 만나다] 복자 정광수(바르나바)·복녀 윤운혜(루치아)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06-20 수정일 2017-06-20 발행일 2017-06-25 제 305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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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서적·성물 배포하다 체포된 부부 순교자

복자 정광수(바르나바)와 복녀 윤운혜(루치아) 부부 초상화.

복자 정광수(바르나바)와 복녀 윤운혜(루치아) 부부는 함께 신자들에게 신앙서적과 성물을 보급하며 신앙생활을 하다 순교한 부부 순교자다.

복자는 경기도 여주 부곡(현 여주군 금사면 도곡리)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복자와 혼인한 복녀도 양근의 한감개(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서 살며 신앙을 키워나갔다.

복자와 복녀는 혼인했지만, 신자가 아닌 복자 부모의 반대로 교리의 가르침을 지키기 어려웠다. 부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교리를 실천했고,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자 성사를 받고 고향 인근에 교리를 전했다.

부부는 1799년 한양으로 이주해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복자의 동생인 정순매(바르바라)도 함께했다. 부부는 자신의 집 한편에 공소를 지어 신자들이 모일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서는 주문모 신부가 주례하는 미사도 봉헌됐다.

복자는 양반 집안에서 교육을 받은 만큼, 학식이 풍부했다. 그는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교회서적을 필사해 신자들에게 배포했다. 복녀 역시 이런 활동에 동참해 예수와 마리아의 상본을 만들거나 묵주를 제작해 신자들에게 보급했다. 가까운 신자들과 자주 만나 교리를 연구하거나 기도모임을 하기도 했다. 자녀들에게도 일찍부터 교리를 가르쳐 신앙의 길로 이끌었다.

1801년 복녀의 언니인 윤점혜(아가타)가 체포되자 부부는 머지않아 포졸들이 잡으러 올 것을 예감했다. 복녀는 복자를 피신시키고, 교회 서적과 성물들을 다른 신자들의 집에 옮겼다. 실제로 부부는 이미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지목돼 있었고, 같은 해 2월 부부의 집에 포졸이 들이닥쳐 복녀가 체포됐다. 복자는 한양과 지방을 오가면서 피신했지만, 더 이상의 피신을 단념하고 스스로 나아가 신자임을 고백했다.

부부는 여러 차례 배교를 강요받았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았고, 주위 신자들을 밀고하라는 말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에 복녀는 1801년 5월 14일 한양 서소문 밖에서, 복자는 1802년 1월 30일 여주에서 각각 참수로 순교했다.

■ 발자취 만날 수 있는 곳 - 여주성당, 양근·어농성지

어농성지.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용인대리구 여주본당(경기도 여주시 우암로 5)이 관할하는 여주 지역은 복자가 태어나고, 또 순교한 곳이다. 양근성지(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물안개공원길 37)는 복녀가 살던 곳이자, 복자에게 신앙을 전한 권철신이 교리를 가르치던 자리다.

또한 복녀의 집안 파평 윤씨의 선산에 자리한 어농성지(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로62번길 148)는 이들 부부의 의묘를 만들어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