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선교지에서 온 편지 - 칠레] 어설프지만 자랑스러운 우리 본당 꽃꽂이

문석훈 신부
입력일 2017-06-20 수정일 2017-06-20 발행일 2017-06-25 제 3050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찬미예수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칠레는 어느덧 겨울이 한창입니다. 특별한 난방이 없는 홑벽이 전부인 집들은 정말 그 자체로 냉장고나 다름이 없답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티아고는 분지지형이라는 특성상 매연이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난방시설을 갖추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그나마 한국에서 떠나올 때 꾸역꾸역 담아온 온수매트가 위안이 돼주지만 언제나 얼굴을 길바닥에 내놓은 듯 시렵습니다.

새 본당에 온 지 어느덧 3개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본당에서 새롭게 시작한 것들이 몇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전례꽃꽂이입니다. 칠레의 많은 본당들이 제단이나 성모님께 꽃을 봉헌하는데, 언제나 큼지막한 화병에 꽃을 꽂아서 둘 뿐 별다른 의미나 특색은 없습니다.

큰 미사의 경우에는 좀 더 많은 꽃을 봉헌하는데 때로는 커다란 국화를 잔뜩 꽂아서 제대, 십자가 양 옆 성모상, 그 외 성상들 앞에 두어 상가집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교구에 부탁해서 받아둔 전례꽃꽂이 책들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왕 꽃을 봉헌할 것이면 전례의 의미를 담아서 더 아름답게 봉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꽃꽂이라곤 해본 적이 없고, 매번 자매님들이 하신 것들을 보기만 한 터라 무엇부터 해야 할지는 몰랐습니다. 괜히 한국에 있으면서 눈만 고급이 되서는 생각한 것을 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본당의 누구도 꽃꽂이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하면 “아~”하면서 다들 별말이 없습니다. 오히려 같이 전례꽃꽂이를 준비하는 자매들은 이 시간을 엄청 좋아합니다.

문석훈 신부와 본당 신자들이 전례꽃꽂이로 꾸민 제대의 모습.

사실 결과물은 한국의 작품들에 비해서 정말 보잘 것이 없습니다. 칠레에도 꽃의 종류가 많지만 너무도 비싸기 때문에 다양한 꽃을 구입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꽃꽂이 도구들을 판매하는 곳도 별로 없어서 구매하기가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아쉬움이 많이 남게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수녀님은 제가 올린 사진을 보고, “수고는 하셨는데, 꽝이네요”라며 댓글을 남기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참 재미있는 것은 신자들은 그 꽝이라는 꽃꽂이들을 보면서 늘 새로워하고, 다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꾸밀지 기다리고, 사진을 찍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미사를 마치고 오후 9시가 넘어서야 꽃꽂이를 하는데도 함께하는 자매들은 언제나 기뻐합니다. 그런 기쁨 때문에 저 또한 우리 본당의 결과물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아마 주님께서도 이런 작은 이들의 정성을 기쁘게 봐주시지 않을까요?

내일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준비를 위해서 또 자매들을 만납니다.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대축일 준비를 언제 하냐고 묻는 자매들과 또 재미있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 후원금은 수원교구 해외선교지를 위해 사용됩니다.

※ 후원 ARS : 1877-0581

※ 후원 계좌 : 국민 612501-01-370421, 우리 1005-801-315879, 농협 1076-01-012387, 신협 03227-12-004926, 신한 100-030-732807(예금주:(재)천주교수원교구유지재단)

※ 해외선교지 신부님들과 교우들을 위한 기도 후원 안내

-해외선교지 신부님들과 교우들을 위한 묵주기도, 주모경 등을 봉헌한 뒤 해외선교후원회로 알려주시면 영적꽃다발을 만들어 해외선교지에 전달해 드립니다.

※ 문의 031-268-2310 해외선교후원회(cafe.daum.net/casuwonsudan)

문석훈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