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칠레는 어느덧 겨울이 한창입니다. 특별한 난방이 없는 홑벽이 전부인 집들은 정말 그 자체로 냉장고나 다름이 없답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티아고는 분지지형이라는 특성상 매연이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난방시설을 갖추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그나마 한국에서 떠나올 때 꾸역꾸역 담아온 온수매트가 위안이 돼주지만 언제나 얼굴을 길바닥에 내놓은 듯 시렵습니다.
새 본당에 온 지 어느덧 3개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본당에서 새롭게 시작한 것들이 몇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전례꽃꽂이입니다. 칠레의 많은 본당들이 제단이나 성모님께 꽃을 봉헌하는데, 언제나 큼지막한 화병에 꽃을 꽂아서 둘 뿐 별다른 의미나 특색은 없습니다.
큰 미사의 경우에는 좀 더 많은 꽃을 봉헌하는데 때로는 커다란 국화를 잔뜩 꽂아서 제대, 십자가 양 옆 성모상, 그 외 성상들 앞에 두어 상가집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교구에 부탁해서 받아둔 전례꽃꽂이 책들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왕 꽃을 봉헌할 것이면 전례의 의미를 담아서 더 아름답게 봉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꽃꽂이라곤 해본 적이 없고, 매번 자매님들이 하신 것들을 보기만 한 터라 무엇부터 해야 할지는 몰랐습니다. 괜히 한국에 있으면서 눈만 고급이 되서는 생각한 것을 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본당의 누구도 꽃꽂이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하면 “아~”하면서 다들 별말이 없습니다. 오히려 같이 전례꽃꽂이를 준비하는 자매들은 이 시간을 엄청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