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깨어있는 행복한 종

한민희(바오로·수원교구 화서동본당)
입력일 2017-06-13 수정일 2017-06-13 발행일 2017-06-18 제 304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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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작은 침묵으로

죽음보다도 더 무섭고 깊은 슬픔으로

밀려오는 것이 바로 나의 무디어짐입니다.

술에 취한 듯 세상의 혼란에 빠져 마비된 온 감각으로

매 순간 새롭게 나의 곁으로 오셔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시고 안아주시고

기도하시며 항상 함께하셨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허수아비처럼 살아온

이 불쌍한 죄인을 용서하소서.

그 무디어짐으로 점점 딱딱해지고

가시덤불로 휩싸인 나의 밭에서

어찌 주님의 말씀과 사랑이 싹트고 성장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이 순간도 더욱더 크신 십자가 고통의 신음으로

나를 위해 기도하시며 내뿜으시는 그 뜨거운 사랑의 기운이

내 안에 깊게 스며듦을 느낍니다.

당신의 크신 사랑과 뜻으로

나의 마음에 성령을 불어넣어주시어

다시 눈을 뜨고 무디고 딱딱해진 허물과 죄들을 부수어

촉촉한 흙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나의 온 감각들을 새로이 살아나도록 치유시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비춰주신 그 빛으로

내 안에 작은 허물도 잘 볼 수 있게 하시고

고통받고 신음하며 울부짖는 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시며

매 순간 넘치도록 내려주시는 당신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시어

언제나 항상 잊지 않고 오로지 당신 뜻대로 살게 하소서.

이제 긴 잠을 자고 일어난 개운한 느낌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해 주신 나의 주님, 나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항상 깨어 주님과 함께 하며

나의 생각보다 주님의 생각을, 나의 일보다 주님의 일을 잘 하는

행복한 깨어있는 종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작은 겨자씨의 희망을 마음 깊이 안아봅니다.

성령님이시여, 제 영혼이 다시 잠들지 않고

시들지 않고 무디어지지 않도록 불같은 성령의 기운으로

저를 항상 감싸주소서. 아멘.

한민희(바오로·수원교구 화서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