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가정과 민족화해 / 윤훈기

윤훈기(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
입력일 2017-06-13 수정일 2017-06-13 발행일 2017-06-18 제 304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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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동체인 가정은 큰 공동체인 사회와는 많이 대비된다. 가정엔 권력투쟁이 없고 계급도 없다. 업무실적 부담도 없고, 해고당하지 않는다. 부당경쟁을 강요하지도 않고, 서로 올바르게 살자고 다독거려준다. 부족한 대로 알콩달콩 정 나누며 산다. 하늘의 따스한 평화가 늘 넘쳐나서, 사회에서 받은 상처가 치유된다. 이게 전통적인 가정의 존재의미였다. 하지만 요즘 사랑이 깨져 병들고 파괴되는 가정이 점점 늘어만 간다.

성찰 없는 근대화의 결과로 문화가 병적으로 물질화 됐다. 사회를 작동하는 냉정한 원리들이 가정에까지 흘러들어서다. 사회의 싸늘한 정신에 감염된 가정에서는 가족들을 거래처 직원처럼 대하며, 사회처럼 서로 상처 주고 헐뜯고 싸우기도 한다. 가정에서는 잘못해도 쫓겨날 일이 없다 보니 패륜의 결과를 걱정하지 않는다. 외형주의에 빠져서 큰 몸, 큰 집, 큰 차만 행복으로 여긴다. 그러다가 가족구성원들은 모두 서로 ‘노예화’ 됐다. 돈 버는 노예! 살림하는 노예! 공부하는 노예! 주인은 노예를 차갑게 대하고, 노예는 항상 탈출을 꿈꾼다. 결국 가정 밖에서 영혼의 안식을 찾으려고 헤매기도 한다. 청소년 자살과 가출은 심각한 수준이다.

가정의 시작인 결혼은 가장 작은 통일이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올바른 통합의 원칙 즉, 신뢰와 사랑과 존중 같은 공존의 철학이 잘 지켜져야 한다. 옛날에는 결혼하는 이유가 가문과 인류공동체의 존속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자신들의 세속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상대방이 가진 것이 탐나서 결혼하는 이들이 많다. 줄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받고 싶은 것이 많아 결혼한다.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기 위해 결혼한다. 하느님의 마음과는 정반대다.

이렇게 이기적인 마음으로 가정을 만들다 보니, 가족은 자신의 허망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서로 죄인 취급한다. 상대방을 죄인으로 인식하면 사람은 잔인해지기 시작한다. 이렇듯 작은 통일에도 사악한 마음이 깃들면 필연적으로 분열과 파괴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반면 소중한 내 것을 남에게 나눠주고 함께하려는 결혼은 서로의 발전적 상승을 이끌어낸다. 민족통일도 마찬가지다. 가정에서 작지만 아름다운 통합을 이루려는 마음으로 민족화해에 임해야 한다.

작은 성가정들이 모여 큰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가정이 선하고 따스한 공간이어야 하듯이 민족통일도 따스하고 평화로운 공간이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있는 엄청난 재화, 노동력, 지하자원 등이 탐나서 통일을 추구하면 동반 파멸한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민족통일은 ‘우리 반도에 하느님의 뜻이 담긴 큰 성가정 성당을 짓는 일’이어야 한다. 성가정은 쉽게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하느님의 마음을 가정에 은총으로 내려받으려면 오랜 세월 이해와 사랑 그리고 희생으로 고난을 견디어내고 부족함을 채워야만 한다. 민족통일의 시작은 평화로운 성가정이다.

윤훈기(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