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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평화를 빕니다

이연세(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입력일 2017-06-13 수정일 2017-06-13 발행일 2017-06-18 제 3049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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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부대에서 항공기가 추락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항공기 사고조사위원장으로 임명돼 사고현장으로 급파됐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부서진 항공기의 잔해들, 조종사와 탑승자들의 신체 일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연료 탱크에서 흘러나온 항공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하는 불안감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다가 잠에서 깼습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됐습니다. 침대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휴! 꿈이었네. 정말 다행이구나!’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습니다. 사고조사는 작년까지 제가 맡았던 임무 중에서 가장 어렵고 고통스런 임무였습니다. 다시 잠을 청했지만 이미 각성된 의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또렷해졌습니다. 이제 다시 잠자기는 글렀고 아내가 깨지 않도록 살그머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서재방으로 가서 조용하게 왜 이런 악몽을 꾸게 됐는지 돌아봤습니다.

워크숍 준비도 해야 하고 원고도 써야 하고 밀린 책도 읽어야 하고 더구나 병원에 입원하신 부친 병문안도 가야 하는 등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많습니다. 일이 많기도 하지만 불안의 핵심은 ‘잘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 때문에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미사 봉헌을 할 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평화예식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평화를 빕니다.” 마음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기에 아내와 옆에 앉은 신자들에게 진심을 담아 마음의 평화가 있기를 기원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곤 합니다.

그러면 불안은 왜 생길까요?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프로이트는 불안이 생기는 원인을 무의식적으로 억압된 원초아(동물적 욕구)의 충동이 강해져서 자아가 이를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야 할 잡다한 일들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불안을 느끼게 되면 각성이 돼 불면증에 시달리고 소화불량과 만성피로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럴 때마다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이 부럽습니다. 다니엘은 누구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함을 받고 며칠을 굶은 사자의 밥으로 죽으러 가면서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50대 중반인 저는 아직도 세상사의 불안으로부터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아마도 저에게 나타나는 불안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언제쯤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도 불안을 떨치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붙잡습니다.

이연세(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