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388) 암세포와 소멸의 신비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6-05 수정일 2017-06-05 발행일 2017-06-11 제 304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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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깝게 지내는 신부님들을 만나 국밥을 먹는데, 어느 신부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느 사회건 또 어느 집단이건 간에 공동체를 흔들거나,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꼭 있어.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본당에도 있고, 교구에도 마찬가지로 있다는 것이 문제지.”

그런 다음, 그 신부님은 나를 쳐다보며, “석진아, 너네 수도회도 그런 수사가 있지?”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나는 스스로 찔리는 구석이 있었는지 뜨끔, 그리고 말까지 버벅거리며, “아마도 있겠지.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인가, 뜨끔한 걸 보니!”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부님은 “야,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아”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후유, 다행이다. 그런데 이 웬수들, 오랜만에 만나서 왜 이리 무거운 주제를…. 국밥 먹다 체하겠다.’

그러자 또 다른 신부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정말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자. 사실, 신부들이야말로 본당 안에서 자기 멋대로 흔들기도 하잖아. 그리고 세상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만들고 싶어 하고. 그런데 그건 정말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달콤한 유혹이야, 유혹. 마치 암세포처럼.”

그러자 조용히 있던 다른 신부님이 말하기를,

“신부든, 누구든 간에 공동체를 흔드는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어.

그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는 거야. 그리고 그 사람들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하지, 자신이 하는 일은 늘 대의를 위한 일이라고. 그러면서 늘 문제를 일으켜. 그래서 어쩌면 암세포 비유가 딱 맞는 것 같아. 왜냐하면 암세포도 세포지만, 오로지 커지기만 하는 세포, 그래서 암 덩어리가 되는 것이잖아. 그렇게 커진 암세포는 결국 자신을 유지하는 그 사람의 몸, 생명력까지 죽이지. 그런데 그 사람이 죽으면 자신도 소멸된다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나는 재빨리 ‘암세포’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단어를 검색하면서 예전에는 머리로 알던 내용을 마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즉 정상적인 세포는 분열을 하면서 그 숫자가 늘어나지만, 일부 세포는 자연적으로 소멸됨으로써 전체 세포 숫자를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또 각 세포는 자신만의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능에 따라 사람의 몸을 움직이게 합니다.

하지만 암세포는 소멸의 신비 없이, 그 자체로 무제한 증식을 합니다. 그런데도 몸 안에서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기에, 결과적으로 아무 쓸모 없는 세포 덩어리로서 마침내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갑니다.

문득, 암세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음을 묵상해 봅니다. 우리 몸이건 우리 자신이 속한 공동체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소멸’입니다. 우리 몸이건, 우리 공동체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영성적으로 볼 때, 사욕의 암 덩어리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균형 유지’와 ‘소멸’입니다. 자신을 잘 버릴 때, 자신의 마음을 잘 비울 때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잘 살리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