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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정치 얘기? 잘 합시다!

한민택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7-06-05 수정일 2017-12-12 발행일 2017-06-11 제 304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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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인간 삶의 모든 영역과 상관되는 것이기에, 교회는 정치적 사안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복음적 비전에서 입장을 표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민감한 사안인 만큼,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사실 정치적 사안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복음 메시지에 충실하면서 균형 잡힌 이야기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 정당이나 정치인을 드러내놓고 비방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하느님 말씀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하는 강론의 주제로는 적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론대에서 처세술이나 ‘마음의 평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세상 속 불의와 거짓과 폭력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행위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사적인 영역 혹은 내세에서만 실현되는 나라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체험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었습니다. 강론대에서 선포되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어떻게 우리 삶의 구체적 영역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는지 보여줄 수 있을 때, 그것은 희망을 주고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하느님 말씀’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속박하고 억압하며 거짓과 불의로 인간의 행복을 위협하는 악과 죽음의 세력을 분별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불의를 고발하고 약자의 편에서 고통을 함께 나누며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투신하는 교회의 실천, 특별히 신자들의 실천적 행동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전례 공간에서 선포되는 그리스도 복음의 진위가 드러나고 검증되는 곳은 신자들의 실천적 삶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교회가 정치에 절대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혹시 신앙을 자신의 구미에 맞게 재단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적 이념이나 정당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목자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정치적 혹은 이념적으로 하느님 백성을 편갈라놓고 한쪽 편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살펴야 합니다. 그리스도 복음은 ‘일치의 복음’으로, 모든 종류의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여 구원을 가져다주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구원을 향한 희망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기에 강론대에서는 모든 이를 희망으로 밝히는 메시지가 선포돼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 신념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에서 하나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자신이 가진 정치적 신념의 관철이 아닙니다. 신앙인의 삶은 악과 죄와 죽음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영적 투쟁’의 삶입니다.

여기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세상 속에 존재하는 죄와 악과 죽음의 역사를 분별하고 그를 극복하는 구원의 역사에 투신하는 것이며, 분열과 죽음을 넘어서 사랑의 원리로 살아가는 새로운 존재 방식을 몸소 삶으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한민택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