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순교자를 만나다] 복자 윤유일 바오로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06-05 수정일 2017-06-05 발행일 2017-06-11 제 304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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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교회 밀사로 중국 방문… 성직자영입운동 추진

복자 윤유일 바오로 초상화.

윤유일(바오로) 복자는 우리나라 초기 교회의 밀사로, 성직자영입운동의 주축을 이룬 순교자다.

복자는 1760년 경기도 여주의 점들(현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금사리)에서 태어나 이웃에 있는 양근 한감개(현,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로 이주해 살았다. 복자는 권철신(암브로시오)의 문하에서 서적을 통해 천주교 신앙을 접하고, 스승의 동생인 권일신(프란치스코하비에르)에게 본격적으로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입교한 후엔 동생과 가족들에게 직접 교리를 가르쳤고, 이를 통해 복자의 집안에서는 많은 순교자가 났다. 1801년에 순교한 윤유오(야고보)는 그의 동생이고, 윤점혜(아가타)와 윤운혜(루치아)는 그의 사촌 동생들이다.

복자는 교회의 밀사로서 조선교회의 상황을 중국교회에 알리고, 성직자를 국내에 영입하기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초기교회 지도자들은 1789년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에게 밀사를 보내 그동안의 상황을 보고하고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고자 했다. 이에 성격이 온순하며 학식이 높고 심지가 굳은 복자를 밀사로 선발했다.

복자는 중국을 오가는 상인으로 가장하고, 주교에게 보내는 서한을 전달했다. 그가 베이징을 방문하자 온 교회가 놀랐다.

당시 구베아 주교는 “윤 바오로의 방문은 생각지 못했던 일로, 베이징교회는 온통 환희에 젖었다”면서 “아직 선교사도 찾아가지 않은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 나라에서 온 놀라운 복음 전파 소식을 듣고, 교회는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고 기록했다.

복자는 구베아 주교에게 성직자 영입을 위해 조선교회가 준비해야 할 일에 관해 들었다. 복자가 이때 들여온 포도나무는 우리나라의 첫 포도나무로, 당시 신자들은 이 포도나무에 열린 과실로 포도주를 담가 우리나라에서 봉헌한 첫 미사에 사용했다.

또한 복자는 베이징에 머물면서 세례를 받고 이어 구베아 주교에게 견진성사를 받았다. 조선교회 신자로서 견진성사를 받은 이는 복자가 처음이었다.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성직자를 영입하는 길은 험난했다. 구베아 주교가 파견한 신부가 밀사와 만나지 못해 영입을 실패하기도 하고, 거센 박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성직자영입운동 자체를 중단하기도 했다. 신부를 국경에서 상봉했지만, 감시가 심해 헤어지는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복자는 포기하지 않고 주문모 신부를 국내에 입국시켰고, 이후로도 중국교회와 연락하는 일을 도맡았다.

복자를 체포한 박해자들은 주문모 신부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복자에게 수없이 형벌을 가했다. 하지만 복자의 확고한 뜻을 굽힐 수 없었고, 박해자들은 복자를 때려죽이기로 결심했다. 복자는 1795년 6월 28일 35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양근성지.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성인 발자취 만날 수 있는 곳-양근·어농성지

양근성지(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물안개공원길 37)는 복자가 권철신·권일신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가족들에게 신앙을 전해준 곳이다.

어농성지(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로62번길 148)는 복자의 집안인 파평 윤씨의 선산이다. 성지는 복자를 비롯한 파평 윤씨 일가 순교자들과 주문모 신부 등의 의묘를 만들어 현양하고 있다.

※문의 031-775-3357 양근성지, 031-636-4061 어농성지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