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천사는 말씀을 입는다 / 한분순

한분순(클라라) 시인
입력일 2017-06-05 수정일 2017-06-05 발행일 2017-06-11 제 304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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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은 이제 시대의 중독이 된 듯하다.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냥’ 갖고 싶어서 뭔가를 사들인다. 이렇듯 까닭 없는 쇼핑에 다들 탐닉한다. 어쩌면 나약한 인간에겐 ‘고독’이라는 원죄가 있어, 존재의 외로움을 달래려 곁에 둘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마음의 든든한 요새를 건설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은총이 도착하기를 바라듯 사람들은 절실히 택배를 기다린다.

‘유행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익숙한 이 인용은 다시 생각하면 나만의 스타일을 지녀야, 변덕스러운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행복은 새로운 멋이 아니다. 단지 신제품을 판촉하려는 마케팅에서 나온다. 그런 영리한 호객의 속삭임에 휘둘리지 않고, 내게 가장 어울리는 차림을 줄곧 입는 것이 오히려 진짜 멋이다.

예술에서 훌륭한 성과물들은 기존의 규칙을 뛰어넘는다. 일상의 예술 실천이라 일컬을 옷매무새도 마찬가지다. ‘멋진 무질서’라는 시처럼, 반듯하게 차려입고 아주 사소한 것만 흐트러트리면 훨씬 돋보인다. 이를테면 단정한 정장을 입고, 스카프만 일부러 느슨히 하는 ‘무질서’를 더하면 맵시가 난다. 갖춰야 할 것은 쇼핑이 아니고, 내 개성을 지키는 용기이다.

한창 많이 읽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 제목은 명품의 판타지아 속에 머무르는 도시인의 꿈이다. 비싼 옷을 가지려 영혼을 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사는 주님의 말씀을 입는다. 이는 가장 영원할 스타일이다.

한분순(클라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