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정치 얘기 하지 마세요 / 한민택 신부

한민택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7-05-30 수정일 2017-05-31 발행일 2017-06-04 제 304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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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신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면 좋겠어요?”

저의 이 질문에 한 자매님께서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신부님, 제발 강론대에서 정치 얘기 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세요. 지난 주일 강론 시간 내내 너무 힘들었어요.”

이 말씀을 필두로 그 자리에선 신앙과 정치의 관계에 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고, 토론은 쉽게 잦아들 줄을 몰랐습니다.

강론대에서 정치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성당에 하느님 말씀을 들으러 가는 것이지, 사제의 사사로운 정치적 의견을 들으러 가는 것은 아니라고.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종교란 개인의 영혼 구원과 관련된 일이니, 정치와 같은 세속 일은 오로지 세속에 맡겨야 한다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혹시 자신이 “교회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하는 그릇된 질문의 희생양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예수님의 삶을 바라볼 때, 그분은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셨다고 결론 지을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 22,21)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그분은 당신을 따르는 무리를 정치세력화 하지 않으셨으며, 정치적인 사안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란 정치적 삶과 전혀 무관한, 사적이고 영적인 차원에만 관련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질문을 바꿔서, “예수님이 인류에 가져다주신 구원의 본질은 무엇이며, 인간 삶의 어디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실재인가?”하고 묻는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성경의 증언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당신의 온 삶을 통해 이 세상에서 이미 실현되는 나라로 드러납니다. 그 나라는 당신의 온 삶을 내어놓는 ‘자기증여’라는 극진한 사랑의 행위를 통해 실현되는 ‘상태’로서의 나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다스리심이 ‘현실화’되고, 그 사랑 안에서 인간의 근본적이고 전인적인 쇄신이 이뤄지며, 모든 죄와 악과 죽음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이 실현됩니다. 그리스도 구원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란 없습니다. 구원을 가져다주는 복음의 힘(참조: 로마 1,16)은 죄와 죽음과 악이 지배하는 모든 곳, 곧 인간의 사적이며 내적인 차원뿐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 등 인간 삶이 영위되는 모든 곳에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해방의 복음은 모든 곳, 모든 종류의 속박이 자행되는 곳, 모든 종류의 거짓과 폭력과 죽음의 힘이 활동하는 곳에 선포돼야 합니다. 정치가 관심을 두는 곳이 인간 삶의 전체 영역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 역시 정치적 사안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민택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