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이연세(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입력일 2017-05-30 수정일 2017-05-30 발행일 2017-06-04 제 304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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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어버이날! 그 아름다운 날에 난데없는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강원도 삼척지역에서 산불진화 임무를 수행하던 산림항공관리소 소속 카무프(KA-32) 헬기의 비상착륙 사고 소식입니다. 헬기는 연무(煙霧)로 시야가 가려지며 고압선과 충돌했고, 충돌할 때 검사관이 동체에서 추락해 안타깝게도 순직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산림항공관리소는 제가 지난해 12월 항공안전에 대한 특별강연을 했던 곳이기에 더욱 가슴 아프고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산불진화는 조종사들이 꺼려하는 위험하고 고난이도의 임무입니다. 불시에 분초를 다투며 출동해야 하는데다 물탱크에 물을 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물 위에서 제자리비행을 해야 하며, 산불을 빨리 진화하려면 연기로 인한 시야 제한에도 불구하고 저공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산불이 발생한 지역 대부분이 산악지역으로 바람이 거세고 돌풍이 발생해 헬기를 조종하는데도 더 많은 힘이 듭니다. 이처럼 다양한 위험요소에 노출돼 임무를 수행하는 조종사들은 ‘목숨을 내놓고 임무를 수행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불진화 임무에는 비행 기량이 우수하고 경험이 많은 조종사들이 필수적입니다. 한 번 투입된 조종사들은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한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고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몇 년 전에는 수십 대의 헬기들이 좁은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공중충돌 위험을 피하려다 추락한 사고도 있었습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번에 비상착륙한 헬기도 짙은 연기로 인해 조종사들이 고압선을 발견하지 못해 충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저도 헬기조종사로 근무하며 수많은 산불진화 임무에 투입됐고, 여러 번 위험한 지경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 위에서 제자리비행을 할 때 헬기의 하강풍에 의해 물보라가 심하게 일어나 헬기가 자세를 잃고 물에 추락할 위기일발의 순간을 겪기도 했습니다. 돌풍에 휘말려 헬기의 조종간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당황한 적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10시간 이상 장시간 산불진화를 하느라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항공기 사고는 순식간에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합니다. 조종사가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를 했더라도 하느님의 보살핌이 없다면 안전비행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조종을 할 때는 ‘늘 겸손한 마음,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종간을 잡아야만 합니다. 저는 31년 동안 수천 시간의 비행임무 및 지휘관 직책을 수행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다행스럽게도 단 한 건의 사고 없이 안전하게 소임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로움과 은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저는 이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며 하루하루가 생일이라는 마음으로 감사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 산불진화 임무수행 중 하느님 품에 안긴 고인에게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주소서! 아멘!

이연세(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