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87) 아하, 그 마음이겠구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5-30 수정일 2017-05-30 발행일 2017-06-04 제 304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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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연구소 소임을 맡고 있을 때 여러 가지 도움을 주신 분들 중 몇 분이 오랜만에 수도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화 중 자매님 한 분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요즘 딸아이가 관절염이 심해 병원에 데려갔더니 수술비가 150만 원 정도 나온다고 하네요. 할 수 없죠. 그런데 수술을 해서 낫기만 한다면 좋겠는데, 걱정이네요.”

이 말을 듣다가 문득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 자매님 나이는 40대 중·후반 정도인데, 딸아이가 관절염이라니. 아무리 젊은 나이에 관절염이 생겼다고 해도 그렇지. 도대체 자매님은 몇 살에 결혼을 하신 것일까? 나는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우리 딸 나이요? 10살이에요.”

순간, ‘엥…. 10살에 관절염이라…. 그 나이에 과연 관절이 형성되기는 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정말 무식한 건가!’

그래서 나는 그 자매님에게 위로를 해 드릴 겸 말했습니다.

“어린 딸이 관절염을 앓게 돼 정말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그런데 수술비 150만 원 정도를 지불하면, 완치는 될 수 있다고 하던가요?”

“수술을 하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고 하니, 수술은 해 주고 싶어요. 비용이 아무리 들더라도요. 그래서 우리 딸을 위해 기도를 좀 해 주세요. 이름은 쥴리예요.”

“아, 쥴리. 그럴게요. 그런데 쥴리는 세례명인가요?”

순간, 분위기가 쏴-아…. 그리고 몇 초가 흐른 뒤, 함께 차를 마시던 분들이 일제히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매님은 얼굴이 붉어지며 나에게 손사래를 치더니,

“신부님, 우리 딸 쥴리는 사실, 우리 집 강아지예요. 저희 부부가 10살, 아니 10년을 키웠어요. 사람 나이로 치면 50대 중반이구요.”

나도 머리를 긁적이면서 함께 웃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자매님의 말투나 억양은 정말 친딸을 걱정하는 듯했습니다. 사실, 그분들에게 강아지는 반려동물을 넘어 그냥 가족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자매님, 강아지의 수술비가 꽤 비싸네요.”

“가족이 아픈데, 돈이 문제겠어요.”

순간, 나는 어마어마하게 큰돈 ‘150만 원’에 눈이 멀어서 그만, “자매님, 나도 자매님네 가족 할 테니, 150만 원 주실래요? 히히히”라고 말해버렸습니다.

이 말을 듣자, 자매님은 그 큰 눈을 휘둥그레 뜬 후, 다시 방글방글 웃으며 말하기를,

“에이, 신부님은 반가워도 제가 번쩍 들어 안을 수 없잖아요. 신부님, 우리는 아파트 10층에 사는데요, 우리 강아지는 제가 어디 나갔다가 아파트 현관을 지나치기만 해도 좋아서 마루를 빙글빙글 돈다고 해요. 그리고 현관문을 열면 내 품에 안기는데, 그 기쁨은…. 정말 모르는 사람은 모를 거예요.”

사람이 동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이 ‘아하, 그 마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놀라운 사랑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150만 원을 더 준다 해도, 결코 그 자매님을 위해 마루를 빙글빙글 돌 자신이 없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