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새로운 시대 막을 열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05-30 수정일 2017-05-30 발행일 2017-06-04 제 3047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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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요한 20,19-23)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에 관하여 온전히 깨닫지 못하던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하시어 모든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힘도 주시어 예수님께 보고 배웠던 바를 온 세상에 선포하도록 이끌어주셨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령께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도록 이끌어 주시고,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의 기쁨을 기꺼이 선포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교회는 이러한 성령 강림 대축일을 끝으로 부활시기를 마무리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이 승천과 성령 강림 사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가운데 당신께서 제자들을 떠나야 한다는 점을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하시면서도, 당신께서 반드시 다시 올 것이며, 아버지께로 가게 되면 다른 위로자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성령 강림 사건으로 이 모든 일들이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일을 마무리하는 성령 강림 사건은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여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도 2,1에 따르면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내리신 날은 오순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한지 오십 일째 되던 날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오순절이 되면 시나이 산의 계약을 기억하며, 이 계약을 통해 자기 민족이 시작되었음을 기뻐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오늘을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탄생한 날, 곧 교회의 생일로 여깁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써 교회가 본격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의 일을 해 나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교회는 200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늘 2독서가 이야기하듯이 성령께로부터 다양한 은사와 직분을 받아 다양한 분야에서 하느님의 일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1코린 12,8-10). 어떤 사람은 성직자로 자신을 봉헌하여 하느님의 일을 해 나가고 있고, 어떤 이들은 수도자로서 복음 삼덕을 살아가며 하느님 나라를 미리 보여주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평신도로 살아가면서 다양한 단체 안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매우 다양한 은사와 직분, 활동이 있기 때문에 자칫 서로 다르다고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이 모든 것은 같은 성령의 활동이며, 같은 주님께서 맡기신 일이고, 같은 하느님의 일들입니다. 성령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당신의 은사와 직분, 활동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시어(1코린 12,11),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일을 해 나가도록 이끌어 주시는데, 이 모든 것은 “공동선”을 위한 것입니다(1코린 12,7). 여기서 교회의 공동선이란 교회 공동체가 일치하여 세상 모든 이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이처럼 같은 성령에게서 오시는 다양한 은사와 직분, 활동 덕분에 풍요로운 공동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처럼 서로 각자 직무와 은사에 있어서 구분되지만 하나의 공동체,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하나의 몸을 이루며 살아가게 됩니다. 각자 다른 지체들이지만 그리스도라는 한 몸을 이루며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일이 아닌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아 다시 한 번 우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다양한 은사와 직분을 받아 다양한 방식의 활동을 해 나가고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와 직분, 그리고 활동은 모두 하느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교회의 공동선을 위한 것임을 기억합시다. 우리 모두가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와 직분들을 자신이 아닌 하느님의 일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을 때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훌륭한 몸, 성령의 성전, 하느님의 집을 이룰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가 생일을 맞은 오늘 깊이 있게 되새겨 보아야 할 점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