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성녀 마리나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입력일 2017-05-30 수정일 2017-07-14 발행일 2017-06-04 제 304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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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나’, 1857년, 라자로스 작, 그리스 아테네 비잔틴 미술관.

성녀 마리나는 서방 가톨릭교회에선 성녀 마가레트, 마르가리타, 말가리다 등으로 불린다. ‘마르가리타’는 라틴어로 진주라는 뜻이다. 그는 농부, 임산부, 교사, 군인의 수호성인으로, 동·서방 교회 모두에서 공경하고 있다.

성녀 마리나의 삶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승이 전해지는데, 그 중에서도 13세기 이탈리아 복자인 보라기네의 야코부스 대주교가 중세 유럽 가톨릭교회에 널리 퍼져 있던 성인들에 대한 전설을 모아 집대성한 「황금전설」에 그 내용이 더욱 상세히 실려 있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마리나는 4세기경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오늘날 터키 중부의 얄바취(에스파르타 지방)에서 동쪽으로 약 3.2㎞ 떨어진 곳)에서 귀족 출신이자 이교사제였던 테도오시우스의 딸로 태어났다. 성녀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그리스도교 신자인 유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스도교를 믿기 시작한 이후 생활 모습이 돌변한 딸을 보고, 아버지는 성녀를 다그쳐 개종 사실을 알게 됐고 화가 나 내쫓아버렸다. 이후 성녀는 귀족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유모와 함께 천한 양치기 생활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14살이 되던 해, 그 지방 장관으로 부임한 올리브리우스가 우연히 양을 돌보던 성녀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성녀가 자유인이라면 자신의 아내가 되고 노예라면 첩이 되어 달라고 매달렸다. 이에 성녀는 자신이 귀족 신분이며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밝혔다. 올리브리우스는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으나, 성녀는 완강히 거부했다. 올리브리우스는 격분해 성녀에게 갖은 고문을 가하고 어두운 감옥에 가뒀다. 감옥에서는 악마가 용의 형상으로 나타나 위협했지만, 성녀는 두려워하지 않고 성호를 그으며 물리쳤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이때 악마가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성녀는 그의 머리채를 잡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그 위에 올라타 무엇 때문에 내게 왔느냐며 윽박질렀다고 한다. 이로 인해 동방교회에서는 주로 사람의 모습을 한 마귀 위에 올라타 사슬로 마귀를 결박하며 망치로 내리치는 모습으로 성녀의 모습을 그리곤 한다. 서방 교회에서는 용의 목에 사슬을 걸고 그 한쪽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한다.

이후 성녀는 다시 법정에 소환돼 갖은 형벌을 받았지만, 몸에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결국 이 기적으로 사람들이 동요하자, 마지막에는 참수형에 처해졌다. 성녀가 처형되기 직전 마지막 기도를 올리자 하늘에서는 “너의 기도를 들었노라”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처형장을 둘러선 수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