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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스켈리그 마이클의 호국신앙 / 윤훈기

윤훈기 (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
입력일 2017-05-30 수정일 2017-05-31 발행일 2017-06-04 제 304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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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교마다 추구하는 교리적 지향점은 다 다르다. 하지만 아무리 종교가 달라도 신앙인들 간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개인적 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쉽게 종교를 바꾸기도 한다. 천주교는 드러내놓고 구복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천주교도의 평균적 내면세계가 타 종교인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종교가 지나치게 구복으로 흐를 때 같은 종교 내에서는 물론 종교 간의 분열과 싸움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나만 더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나, 조목조목 요구사항이 담긴 구체적인 기도를 하느님이 잘 들어주실지 의문이다. 하지만 신앙이 조국을 지켜내려 할 때엔 그 격이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고려 고종 때 오랑캐의 침략으로부터 강토를 수호하겠다는 염원으로 강화도 선원사에서 16년간 온갖 정성을 들여 팔만대장경을 판각해 해인사에 보관했다. 이른바 호국불교사상이다.

천주교 국가 아일랜드에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 6세기를 넘어 아일랜드에서는 천주교의 영성이 여러 방면으로 꽃피웠고 학문도 융성해져서 ‘성인과 현자의 나라’라는 칭송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가 ‘해동성국’이라고 일컬어지던 비슷한 시대였다. 하지만 바이킹들이 침공해 온갖 가톨릭 문화재를 노략질해 가기 시작했다. 당시 바이킹들은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았고 미개하고 잔인하여 그 피해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영성이 깊었던 아일랜드의 천주교 수사들은 신앙과 조국을 지켜내려는 염원으로 우리의 독도와 비슷하게 생긴 섬의 꼭대기에 수도원을 건립했다. 그 섬은 본토와 14km나 떨어진 무인도였고 식수를 전혀 얻을 수 없었다. 수사들의 고행이 얼마나 치열했을까? 비바람을 겨우 막을 수 있는 돌담집을 짓고는 그 안에서 교리들을 필사하는 정성을 멈추질 않았다.

그 수도원의 이름이 스켈리그 마이클이다. 그 수도원은 이후 700년간 계속 존재했고 바이킹의 만행이 끝나가자 고통의 흔적을 간직한 채 사적지가 됐다. 결국 그 척박한 돌섬은 오랜 시련을 참고 견디어냈던 정신사적 가치가 인정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거친 돌섬의 꼭대기에 수사들이 맨손으로 피 흘리며 지은 돌무더기집 몇 채가 인류의 소중한 보물이 된 것이다. 게다가 그 섬이 ‘스타워즈7’의 촬영지가 되면서 세계적인 관광지로도 급부상했다.

진실된 호국신앙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같은 종교라도 개인의 영달만을 기원하며 믿는 것과 조국의 안위를 염원하며 믿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내가 없어도 조국은 있지만, 조국이 없다면 자신의 존재는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그 옛날 오랑캐들이 들끓던 아일랜드나 고려시대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기도해야 할 때이다. 내가 만약 이기적인 구복신앙만을 간직한다면 세상은 더 양극화된 불협화음의 싸움판으로 바뀔 것이다. 반면 호국신앙으로 나를 하느님께 바친다면 자신보다 더 위대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얻게 될 것이다.

윤훈기 (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