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10) 산(山)이 아프다 / 강금실

강금실(에스델) 포럼 지구와사람 대표rn
입력일 2017-05-23 수정일 2017-05-23 발행일 2017-05-28 제 3046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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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5일 뉴질랜드 의회가 황가누이 강(Whanganui River)에 권리를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고 이 칼럼란에서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해외 언론은 그달 31일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州) 고등법원이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를 보호하기 위해서 ‘강고트리’ 빙하와 ‘야무노트리’ 빙하에 법인격을 인정하는 결정을 했다고 전한다.(이 법원은 이 판결에 앞서 그달 17일 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에도 사람과 같은 수준의 법적 지위를 인정했다)

인도 갠지스 강의 수원(水源) 역할을 하는 ‘강고트리’ 빙하는 최근 25년 동안 길이가 850m 이상 줄어들었다. 야무나 강의 수원인 ‘야무노트리’ 빙하도 걱정스러운 수준으로 줄어들고 있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이들(빙하)의 권리는 사인(私人)의 권리와 동등하다”며 “이들을 손상하거나 해를 끼치는 경우 이는 사람을 다치게 한 것과 동일한 일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히말라야 빙하를 훼손하는 사람은 상해죄를 저지른 수준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뿐 아니라 히말라야 산의 폭포, 초원, 호수, 숲 역시 법인격을 인정받았다.

산(山)의 빙하와 폭포, 숲 등에게 법인격을 인정하고 이를 훼손할 경우 상해죄를 적용한다는 것은 산의 온전함을 지키기 위한 조치이다. 인간 중심의 현대법체계에서 자연은 법인격이 인정될 수 없는데, 이처럼 그 틀을 깨는 과감한 판결들이 줄지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지구 파괴 상황이 심각해서 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할 수 있다.

한편으론 ‘자연의 권리’가 이러한 판결들을 통해 가시화됨으로써 우리의 가치관에 근본적 변화가 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자연을 사람 대하듯 해야 한다는 생명 존중의 가치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바탕에 자리잡게 되면, 인간 공동체의 문화와 제도, 운영 방식 등 모든 것이 자연과의 공존을 지향하는 생태윤리의 영향을 받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감수성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생태적 세계관론은 해와 달과 바람 그리고 구름을 형제자매라고 불렀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노래’에 닿아 있다. 산을 나의 형제로 받아들인다면 나무 한 그루마다 말을 건네고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나무를 베고 숲이 훼손될 때 그들이 느낄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성인은 “당신 사랑 까닭에 남을 용서해주며, 약함과 괴로움을 견디어 내는 그들에게서 내 주여 찬양 받으사이다”라고 노래했다. 누가 나에게 상해를 가하면 나의 온전함이 훼손되고 고통스럽듯이, 모든 존재가 상해를 가하면 아프다. 이것을 느끼는 감수성이 살아있는 세계는 참으로 깊고 섬세하며 여린 느낌들로 관계를 재구성하게 될 것이다. 부득이 산을 훼손하게 될 때에도 내가 아프듯 가만가만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은 침묵하고 있을 뿐, 말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귀를 닫고 마음을 닫은 채 그들을 죽은 존재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게도 인격이 있다. 내가 아프듯 산도 아프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자연에게, 서로 아프지 않냐고 묻고 참으며 기다려주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

강금실(에스델) 포럼 지구와사람 대표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