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선교지에서 온 편지 - 남수단] 비가 오기 전에

이상권 신부rn
입력일 2017-05-16 수정일 2018-01-22 발행일 2017-05-21 제 3045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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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은 건기의 막바지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무더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우기는 5월 들어서 시작됩니다.

남수단 사람들은 건기 중에 집을 수리합니다. 이곳의 집들은 ‘투쿨’이라는 아프리카 전통 가옥인데, 흙으로 동그랗게 벽을 쌓고 지붕은 대나무로 틀을 만들고 갈대를 엮어 완성합니다.

대나무는 숲속에서, 갈대는 강가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기가 되면 사람들은 대나무와 갈대를 구해서 팔기도 하고, 집을 수리하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초가지붕처럼 때가 되면 지붕을 새로 해주어야 합니다. 한번 갈대를 올리면 3년 이상 쓸 수 있는데, 흰개미를 잘 처리하지 않으면 이놈들이 갈대를 갉아먹어서 2년이면 새로 바꿔줘야 합니다.

문제는 갈대인데, 혼자 사는 과부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갈대를 구하러 가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갈대를 구입할 여력도 안 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올해는 갈대를 구하기가 힘들어 가격도 많이 올랐습니다. 아강그리알 본당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찾아오는 이들의 집을 한 집 한 집 다 방문하고 지붕을 확인한 다음 몇 집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남수단 주민이 새 갈대로 지붕을 엮고 있는 모습.

폴이라는 장님이 있는데,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아이들이 실수로 집을 홀라당 태워먹었습니다. 집에 찾아가보니 흙벽만 남아있고 몽땅 타버렸습니다. 한센병 환자인 모니카 할머니도 찾아왔습니다. 지붕이 너무 낡아서 돌아오는 우기에는 비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헬렌은 하반신 마비가 있는 과부입니다.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분이신데,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지 성당에 찾아왔습니다.

이번엔 교리교사가 찾아왔습니다. 학교 교실로도 사용하고 있는 공소 지붕이 너무 낡아 갈대를 새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공소는 안 그래도 제가 눈여겨보고 있던 곳인데 교리교사가 먼저 찾아왔습니다. 본당에서 갈대를 지원해주기로 하고, 대나무는 공소 공동체에서 준비하기로 하였습니다. 쉐벳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공소라 지나가는 길에 보니 지붕 작업이 한창입니다. 나중에는 양철 지붕으로 바꿔줘야겠습니다.

양철지붕을 하면 2~3년마다 고칠 필요는 없겠지만 열기를 막지 못하는 큰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강그리알 사제관은 양철 지붕을 갈대로 덮어 조금이나마 열기를 막고 있습니다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별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붕을 새로 만드는 작업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모든 재료가 자연에서 옵니다. 못을 사용하거나 철사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갈대를 엮거나 대나무를 고정할 땐 팜트리 잎이나 나무 껍질, 그리고 유연한 등나무 줄기 같은 것을 이용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모든 것을 활용하는 이들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니 많은 집들이 지붕을 새로 해서 곳곳에 노란 새 집들이 눈에 띕니다. 옆집 수녀원도, 학교도 갈대를 새로 했습니다. 황금색 갈대로 새로 단장한 집을 보니 마음이 뿌듯하면서 안심이 됩니다. 이렇게 이곳은 우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면 이제 씨를 뿌릴 겁니다. 지금은 힘든 시기이지만, 아강그리알에서는 서로 도우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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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신부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