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성 게오르기

장긍선 신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rn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입력일 2017-04-30 수정일 2017-05-01 발행일 2017-05-07 제 304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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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게오르기.

동방, 서방교회에서 함께 공경하는 성인 중 하나가 성 게오르기(St George, 조지, 게오르기오스, 275-281~303)다.

게오르기 성인의 아버지 게론티우스는 카파도키아의 로마군 장교였으며, 그의 어머니 폴리크로니아는 시리아의 리다에서 태어난 그리스도교 신자였다고 한다.

게오르기 성인은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14살 때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머니의 고향인 리다로 건너가 살았다. 이후 어머니가 사망하자 17살 되던 해에 로마 군대에 입대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그의 아버지인 게론티우스를 자신의 가장 훌륭한 병사 중 한 명으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입대를 크게 환영했고, 그를 고위직에까지 승진시키며 황제 경호대에서 근무하게 했다.

그런데 303년 2월 24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모든 로마 군인들에게 로마의 신들께 희생 제물을 바쳐야하며, 이에 따르지 않는 모든 병사들은 체포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게오르기 성인은 이에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큰소리로 자신은 그리스도교인이라고 외쳤다. 황제는 화가 났지만 자신이 가장 신임했던 이의 아들을 잃고 싶지 않아, 그에게 로마의 신들께 희생 제물을 바친다면 토지와 돈과 노예를 선물로 주겠다고 회유했다. 그러나 성인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게오르기 성인은 사형 선고를 받았고, 처형되기 직전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죽음을 준비했다. 이후 날카로운 톱니가 달린 바퀴에 찢기는 등 다양한 고문을 받고, 4월 23일 니콜라디아의 성벽 앞에서 목이 잘려 처형됐다. 게오르기 성인의 시체는 리다로 옮겨졌으며, 그곳에서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를 순교자로 존경하며 정성껏 장례를 치렀다.

이렇게 게오르기 성인은 그리스도교의 순교자로, 그리고 특히 십자군 전쟁 시기에는 십자군들의 수호성인 중 하나로 공경 받았다. 전해오는 옛 성인전에 따르면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수호성인 중 한 명도 게오르기 성인이었다.

게오르기 성인에 대해선 동화 같은 전설도 전해지고 있는데, 어느 날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를 요구하는 용을 죽이고 그 지역의 왕의 딸 카시오페아를 구하는 내용이다. 이는 서양에서 용이 악의 상징이기에, 악을 대적해 하느님의 정의를 수호한 것을 표현한 내용으로도 여겨진다. 이 전설에 따라 게오르기 성인의 모습은 군복을 입고 흰 말 위에서 창을 들고 그 아래에 쓰러져 있는 용을 찌르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드미트리 성인도 말을 타고 창이나 칼로 악의 세력을 제압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에, 말 아래의 형상이 용의 모습인지 사람의 형상을 한 악마의 모습인지에 따라 두 성인을 구분한다.

장긍선 신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rn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