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세상살이 복음살이] 잘 쉬고 계십니까?

최용택 기자
입력일 2017-04-30 수정일 2017-05-01 발행일 2017-05-07 제 3043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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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재충전하며 이웃 돌아보는 기회
하던 일 멈추고 쉬는 것 노동 생산성 높이는 역할
만물 창조하시고 쉬셨던 하느님에게서 기원 찾아
단순한 피로회복을 넘어 달려온 길 돌아보는 시간
주변 사람과 관계 다지고 사회와 생태계 돌아보길

가톨릭교회는 올바른 여가가 재충전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백화점의 한 의류브랜드 매장 책임자로 일하는 김수영(가타리나·42·가명)씨에겐 이번 징검다리 연휴도 ‘그림의 떡’이다. 유통업이라는 특성상 남들이 쉴 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경기 침체로 매장 직원 수를 줄여, 잠깐이라도 매장을 비울 수가 없다.

김씨는 “연휴를 이용해 어디 놀러간다거나 집에서 편히 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그나마 백화점이 통째로 쉬는 날 하루 쉬는 게 전부”라고 한숨을 쉬었다. 게다가 김씨는 “매장에서 근무하면서 주일미사를 건너뛰는 것은 일상다반사”라고 했다. 김씨가 근무하는 백화점은 한 달에 하루 월요일에 쉰다.

■ 휴식의 의미

한국사회가 사회·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여가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국민들이 휴식과 여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5년 5월 제정된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이다. 이 법은 “여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일과 여가의 균형을 통해 국민들이 여가가 있는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정됐다.

한마디로 국민들에게 쉬라고 권고하는 법이다. 국민들에게 쉴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국가가 국민이 잘 쉴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법은 우리나라가 비로소 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주요 변화로 풀이된다.

휴식은 사전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쉬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삶은 노동과 휴식으로 이뤄진다. 노동은 인간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며, 휴식은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즉 노동과 휴식은 서로 연결돼 있다. 열심히 일을 했으면 또 잘 쉬어야 한다. 잘 쉬어 재충전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 일을 계속하기가 어렵다. 우리 인생에는 휴식이 꼭 필요하며, 중요한 일부분이다.

■ 휴식에 관한 교회 가르침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창세 2,2-3)

휴식의 기원은 창조주 하느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인간 본성 속에 있는 노동과 휴식의 교대는 창조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느님이 직접 원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쉴 것을 당부하신 바 있다. 예수님께서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주일의 성화에 관한 교황 교서 「주님의 날」(Dies Domini)에서 “휴식은 ‘거룩한’ 것”이라면서 “휴식은 인간이 때로는 너무 힘든 속세의 노동 주기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업적이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해 주기 때문”(65항)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교회는 노동으로부터의 휴식을 하나의 권리라고 강조해왔다.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듯이”, 그분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가정, 문화, 사회, 종교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휴식과 여가를 누려야 한다”(「기쁨과 희망」(Gadium et Spes) 67항)는 것이다. 휴식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데 필수요소다.

■ 올바른 휴식

경제가 발전하면서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휴식과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교회는 휴식과 여가가 “정신의 휴식 또 몸과 마음의 힘찬 건강을 위해 바르게 선용되어야 한다”(「기쁨과 희망」 61항 참조)고 강조한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김민수 신부는 “여가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표현”으로 “올바른 휴식과 여가를 위해서는 여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신부는 올바른 휴식과 여가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우선 ‘여가를 위한 여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여가를 즐기기 위해 주말에 자동차로 야외에 나갔다가 고속도로 정체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여가를 즐기는 것이 또 다른 노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올바른 여가를 위해서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유와 자아의 성장과 발견을 위한 노력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신부는 “여가가 단순히 노동을 멈추고 피로에서 회복하며 재충전하는 것을 넘어 그동안 달려온 길을 돌아보면서 성찰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신부는 올바른 여가문화를 위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꿋꿋이 지켜온 안식일 개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식일은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자기 삶을 들여다보며 그 삶을 하느님께 연결시키는 거룩한 시간이었다. 즉 휴식을 통해 하느님이 마련해주신 질서를 성찰하고 그분의 거룩함을 인식하면서, 상품화되고 왜곡된 여가문화를 비판하고 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그렇다면 어떻게 쉬는 것이 좋을까?

서울성모병원 평생건장증진센터장 김영균 교수는 잘 쉬는 방법으로 여행을 꼽는다. 김 교수는 “건강한 휴식을 갖고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혼자 떠나는 여행이 좋다”면서 “만일 가족 여행을 떠난다면 구성원 모두가 신자라는 전제하에 성지순례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여행뿐 아니라 독서, 영화 감상, 사진 촬영 등 문화생활은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어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적당한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도 육체 및 정신 건강에 좋다”고 추천했다.

■ 이웃과 함께 하는 휴식

신명기 15장엔 일곱 해 마다 빚을 탕감해주고, 가난한 이들에게 넉넉히 내어주고,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이를 놓아주라고 당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휴식을 해방으로 보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됐으며, 해방된 민족에게 휴식은 자신만을 위한 권리가 아니었다. 다른 노동자, 가축 등과 함께 나눠야 하는 대상(탈출 23,12)이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186항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필요와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난과 고생 때문에 쉴 수 없는 형제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바로 가족과 친지를 포함한 이웃들에게 시간을 내 주고, 이들을 보살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휴가가 이웃과 사회에, 그리고 생태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휴식의 권리가 보다 보편적으로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에서 “휴식의 권리는 적어도 일요일을 포함한 정기적 주간 휴식과 장기간의 휴가, 즉 1년에 한 번의 연가 또는 가능하다면 연중 수차례의 단기 휴가를 포함한다”(19항 참조)고 강조했다. 휴식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잊지 않고, 이들의 인간적 존엄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이동화 신부는 “휴식과 여가는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가고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이라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적어도 이때만이라도 더불어 이웃과 사회를 돌아보고, 우주만물과 전체 생태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