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선교지에서 온 편지 - 남수단]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이상권 신부rn
입력일 2017-04-25 수정일 2018-01-22 발행일 2017-04-30 제 304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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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성지주일을 시작으로 남수단에서의 첫 성주간을 보내고 예수부활대축일을 맞이했습니다. 성지 주일엔 성당 마당에서 성지를 축복하고 성당을 한 바퀴 돌며 행렬을 합니다. 성지가지를 나눠주면 아이들은 순식간에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흔들어 댑니다. 저도 따라서 십자가를 만들어 봅니다.

성지주일 미사를 끝내고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오후에 룸벡에서 성유축성미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목요일 오전에 미사를 드리지만, 여기서는 하루 이상 걸려야 룸벡에 도착하는 사제들도 있고, 주교님께서도 다른 교구에서 오시기에 성지주일에 미리 성유축성미사를 봉헌합니다. 아직까지 룸벡교구 교구장 주교님이 안 계시기에, 토릿교구 주교님께서 오셔서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성 목요일 주님 만찬미사, 물론 발씻김예식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 미리 수녀님께 발씻김 대상자를 뽑으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수녀님께서 말씀하시길, 미리 뽑아놓으면 그 사람이 올지 안 올지 확신할 수 없기에 미사 직전에 그날 온 사람 중에서 뽑는다고 합니다. 대상자들은 대부분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입니다. 아이들의 발을 정성껏 씻겨 주다보니, 제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듭니다.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의 발은 많은 경우 더럽고 상처가 많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 일을 하려고 제가 여기에 왔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4월 14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남수단 신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봉헌하고 있다.

성 금요일에는 오후 3시에 십자가의 길을 하고 바로 이어서 수난예식을 합니다. 문제는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아강그리알에서는 나무 십자가를 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십자가의 길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그 때가 바로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에다가 하루 중 가장 햇빛이 강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성 목요일 만찬 미사 시간에 더위 때문에 땀 빼고 고생을 해서 금요일 십자가의 길이 지레 겁났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아침 일찍 비가 조금 내리더니, 하루 종일 구름이 끼어 해를 가려주고 바람도 조금 붑니다. 정말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마을 곳곳에 미리 표시해 놓은 십자가의 길 각 처를 따라 신자들과 함께 기도를 바칩니다. 어린 학생들이 나서서 한 처씩 맡아 십자가를 듭니다. 저도 한 처를 맡아 십자가를 들고 걸어봅니다. 그리 무거운 십자가는 아니지만, 생전 처음 어깨에 맨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며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묵상합니다.

성 토요일 저녁, 벌써부터 성당에서 북소리와 성가소리가 들려옵니다. 청년들이 일찍부터 나와 미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9시 반 조금 늦게 미사를 시작했습니다. 마당에서 불 축복 예식을 먼저 시작하는데, 마치 캠프파이어하듯 거대한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모닥불 둘레로 모든 신자들이 모여 미사를 시작합니다. 마치 해변에 모닥불 피워놓고 둘러 서있는 기분이 듭니다. 성야미사 성가 소리는 어떤 미사 때보다도 우렁찹니다. 알렐루야 댄서들의 몸동작에서도 부활의 활기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미사가 끝나고 누군가 선창을 합니다. 하나 둘 제대 앞으로 나오더니 항상 그렇듯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온 몸으로 부활의 기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 제대 위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살짝 따라해 봅니다.

이 부활의 기쁨이 남수단의 평화로 이어지기를 기도해봅니다. “Jesu aci rot jot Alleluia, Alleluia!”(예수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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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신부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