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펀펀 사회교리] (17) 기권할 권리? ①

지도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rn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
입력일 2017-04-25 수정일 2017-04-25 발행일 2017-04-30 제 3042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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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의사 분명히 드러낼 때
진정한 ‘권리’라 할 수 있어

아직도 사무실 출근은 낯설다. 교구 사회복지국장으로 1월에 부임해 석 달째가 되었지만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은 것 같다. 창문을 열고 아침 공기를 불러들이며 크게 기지개를 펴 본다. 바다 내음이 실린 바람이 하루를 맑게 만든다. 이때 방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일찍부터 또 무슨 일이지?’

요즘 하도 복지시설에서 말썽들이 많아서, 전화벨이 울리거나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괜히 겁부터 난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르며 담담하게 대답한다.

“예, 들어오세요.”

문을 시부저기 열면서 복지국 직원 둘이 들어온다. 선임 팀장 베드로와 팀장 스텔라다.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함께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권하고 앉는다.

“신부님은 이번에 누구 찍으실 겁니까?”

대뜸 아침부터 선임 팀장 베드로가 또 날궂이를 시작한다. 곧 다가올 대통령 선거 때 누구에게 투표할지를 묻고 있다.

“베드로씨 뭐 또 아침부터 쓸데없는 소립니까?! 다 큰 어른들이 알아서 찍을 일이지, 근데 베드로씨는 누굴 찍을 겁니까?”

되묻는 말에 베드로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저요? 저는 그 날 잠이나 푹 잘 겁니다. 노총각이 데이트할 사람도 없고….”

괜스레 옆에 앉은 미혼인 팀장 스텔라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냥 잠이나 푹 자는 게 남는 것 아니겠습니까?”

베드로의 너스레에 백 신부는 혀를 차며,

“그러니까 한국 정치가 발전이 없습니다. 젊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투표하고, 투표를 통하여 자신들의 의사를 정확히 밝혀 주어야지 좋은 후보가 당선되어 나랏일을 잘 꾸려 나가죠. 안 그래요?”

“예, 신부님 말씀 맞습니다. 그래도 뭐 별로 마음에 드는 후보도 없고. 투표하지 않을 권리도 권리 아닙니까?”

베드로의 반격이 만만찮다. 흡사 준비하고 온 듯한 말투다.

‘그렇구나! 아침부터 시작하는 폼이 그렇다 싶더니만….’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설 내가 아니다.

“물론 기권도 한 가지 표현 방법이겠지요. 투표하지 않을 권리도 권리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분명한 권리를 표현할 때 권리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귀찮아서 투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면, 투표소 밖에서 인증 샷 찍어서 제게 보내 보세요. 그럼 투표 안 할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인정해드릴게요.”

베드로가 꼬리를 팍 내린다.

“뭐 꼭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승기를 잡았을 때 몰아쳐야 한다.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과연 많은 사람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이 투표하지 않을 권리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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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rn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